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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웃 돌아보기 (6)

기사입력 2005.05.09 04:37 / 기사수정 2005.05.09 04:37

김주우 기자

<94학번 스카우트 분쟁>

92년의 강혁사건 이후 아마와 프로간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고 93년에 이르러 둘은 전면전의 양상을 펴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고교를 졸업한 94학번 대어들은 진로를 놓고 유례없는 혼란을 겪게 된다.

당시 서울권의 최대어로는 신윤호가 꼽혔고 야수 중에서는 저학년 시절부터 맹활약한 김동주와 김재현이 돋보였는데 그해 초 OB, LG 양팀은 스카우트 분쟁을 막기위해 서울지역의 고교들을 반으로 분할해 관리하고 있었다. 투수진의 세대교체가 시급했던 LG는 최대어였던 신윤호를 잡기 위해 충암고를 선택했고 OB는 야수 최대어였던 김동주의 입단을 위해 배명고를 연고에 포함시켰다.

이중 신윤호는 이미 2학년 시절부터 LG와의 접촉설이 꾸준히 나돌았고 학교측이 대학진학을 강요하는 와중에 자퇴를 계획하기도 했을만큼 (결국 교내 징계로 인해 출장정지처분)  프로입단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반면 김재현, 이호준은 학교에서 유니폼까지 받아갔을만큼 대학진학으로 진로가 굳어진 상태였고 김동주는 프로행에 무게를 두고 계약시한 종료까지 갈등하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쌍방울, 삼성 등은 몇 안되는 연고지의 유망주들을 (조진호,신경현,김수관) 대학에 넘겨주는 등 아마-프로 양측의 스카우트전 초반은 대학측의 막강한 공세에 프로측이 고전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다른 구단들이 고전하는 와중에 김동주의 입단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던 OB또한 마감시한까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채 (김동주와) 지겨운 실랑이를 벌이던 중, 한양대 진학이 유력했던 심정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심정수의 계약금 3800만원은 계약 당시만 해도 역대 고졸야수 최고대우였으나 며칠 못가 신윤호가 고졸 최초로 1억원을 돌파하면서 가볍게 기록을 갱신)

당시 심정수는 김동주,김재현과 더불어 서울권 빅3로 꼽히던 슬러거로 스스로 대학행을 거부하고 OB 입단을 자원했는데 김동주의 영입이 실패한 후 윤동균 감독은 김동주를 놓친 아쉬움을 풀고자 심정수를 차세대 간판으로 지목, 첫 해부터 그를 중용할 의사를 내비치며 무척 많은 애정을 쏟았다.

당시 고교선수의 프로계약기간은 11월 1일부터 11월 15일, 단 보름으로 학부모와 줄다리기할 시간도 모자랄만큼 짧은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007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김재현의 원정계약, 이호준 구출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며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던 고졸 스카우트 파동은 극한으로 치닿게 된다.

당초 연세대 입학예정이었던 김재현은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10월말에 소집에 들어간후 11월 5일 경에 친선경기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 프로와의 계약 마감일인 11월 15일에 입국하게 되어 있었다. 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재현이 일찌감치 합숙에 들어간데다 계약 마감일까지 해외일정이 잡혀있어 예정대로라면 LG는 그가 귀국하는 15일 외에는 접촉할 기회조차 잡을수 없었던 것.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스카웃이 불가능한 와중에 LG는 일본 원정계약이라는 초강수를 감행하는데 가짜이모사건 등을 비롯한 헤프닝을 겪으며 천신만고끝에 본인의 싸인을 받아 드라마같은 계약에 성공한다. 이 사건으로 한국대표팀은 대회를 주최한 일본측의 엄청난 항의를 받았고 아마측은 김재현의 이영민 타격상을 박탈한다.(2위였던 조현이 승계)

반면 김재현에 비해 프로행이 수월한 분위기였던 김동주는 (청소년대표 제외) 계약기간 마감까지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에 실패하며 고려대로 진로를 확정한다. 고교분할로 인해 김동주와 협상할수 없었던 LG또한 OB와의 계약실패를 은근히 바랬던데다 (유명한 '5천더"는 바로 여기서 나왔는데 OB가 제시한 액수보다 무조건 5천만원 더 얹어줄테니 대학가라는 말이다.) 고려대가 뒤늦게 막강한 물량공세를 앞세워 김동주를 포섭한 것 또한 OB에게는 악재였다. 김동주의 최종 제시액은 1억 5천만원었는데 당시 최고계약금을 받았던 주형광의 계약금 (9200만원)을 감안할 때 OB로서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93년의 스카웃 파동은 드문드문 이어지던 고교선수들의 프로직행을 본격화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사활을 걸고 벌인 관계자들의 사투속에 온갖 편법이 난무하면서 양측에 모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 이후 고교대어들의 프로행은 가속화되었고 김동주를 비롯한 94학번들이 졸업할 무렵 대학야구는 급격히 쇠퇴하며 아마야구의 마이너리그로 전락한다.



김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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