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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엔조 시포의 조국' 벨기에와의 인연

기사입력 2013.12.16 11:41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54년 첫 출전 이후 86년부터 8회 연속 본선진출. 통산 아홉 차례나 월드컵 무대를 밟다보니 대한민국의 역대전적표(歷代戰績表)엔 본선에서만 여러 차례 마주친 팀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태극전사와 가장 많이 대면한 팀은 지난 대회 챔피언 스페인이다. 90년 첫대결에선 0-3으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우리가 졌고, 94년엔 막판 7분 사이에 두 골을 몰아치며 2-2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캐논포 롱슛으로 첫 골을 넣고, 서정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이 경기의 히어로가 바로 홍명보다. 2002년 8강전은 0-0 무승부 후 대한민국의 PK승.

두 번 마주친 팀은 하나 둘이 아니다. 54년(0-9패)에 만난 터키는 2002년 3-4위 전에서(2-3패) 재회하며 ‘최장 간격 시간차 재회’를 기록했고, 86년에 처음 만난 이탈리아와는 매번 한 골 차 승부를 펼쳤다. 86년엔 2-3패, 2002년엔 연장전 끝에 2-1 승. 두 번 모두 조별리그에서 대면한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두 번 다 쓴 잔을 안겼고(86년 1-3, 2010년 1-4), 또 다른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는 우리로부터 연속해서 꼭 한 골씩만 달아나며 ‘아쉬운 맛’을 남긴 팀이다. 90년엔 종료직전의 헤딩골로 0-1, 빗속에서 치러진 2010년 16강전에선 1-2. 94년 3-0으로 앞서다 막판 한국의 파상공세에 흔들리며 가까스로 3-2 승리를 챙겼던 독일은 2002년 상암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단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하며 1-0의 스코어로 결승 티켓을 가져갔다.

2014년 조별리그 추첨결과 우리와 세 번 째 맞대결을 펼칠 팀이 나왔다. 유럽의 ‘붉은 악마’ 벨기에다. 82년 개막전에서 전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물리치며 가능성을 보였던 벨기에는 86년엔 일약 4강에 오르며 자국의 축구역사를 새로 쓴다. 21세의 축구천재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벨기에 수비수 일곱 명이 늘어선 저 유명한 사진은 82년 대회의 상징이 됐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벨기에의 히어로는 엔조 시포다. 출생지는 벨기에지만 이탈리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까닭에 이탈리아와 벨기에가 서로 데려가려고 막판까지 경쟁했던 공격형 미드필더. 멕시코에 1-2로 첫 판을 지고 이라크를 2-1로 잡은 뒤 기사회생, 파라과이와 2-2로 비기며 조 2위로 16강 진출. 90분을 2-2로 치고 받은 뒤 연장전에서 엎치락 뒤치락 처절하게 맞서다 벨기에가 가까스로 4-3으로 물리친 상대가 바로 이번 월드컵에서 한 조로 편성된 러시아다. 당시 출전국명은 소련. 8강전은 스페인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 준결승에선 마라도나에게 페널티박스 안에서만 수비 여섯 명이 돌파당하는 기가 막힌 골을 포함, 두 골을 내주며 0-2 패.

자, 이제 한국과 벨기에의 인연을 파헤쳐 보자. 1990년 6월 12일 베로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도시. E조 개막전이던 이 결전의 출연자는 한국과 벨기에였다. 한국의 스타팅멤버엔 두 명의 대학생 선수의 이름이 있었다. 그렇다. 이 경기는 홍명보와 황선홍의 월드컵 데뷔전이다. 건국대 4학년의 장신공격수 황선홍은 예선 때 혜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득점을 올리며 이탈리아 행 티켓 획득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지만, 홍명보는 본선 직전 깜짝발탁으로 승선한 경우다. 월드컵 아시아예선 내내 중앙수비수의 중책을 맡아 전 경기를 출장했던 조윤환은 ‘상대적으로 스피드가 쳐져 유럽 팀을 상대하기엔 적합지 않다’는 이유로 하차하고 홍명보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웠던 것. 황과 홍의 백넘버는 그 때부터 NO.18과 NO.20이었다.

아래 위 붉은색 경기복의 한국과 아래 위 흰색의 원정경기복을 입고 나온 벨기에. 전체적으로 밀렸으되 전반전을 0-0으로 버틴 한국은 52분 골키퍼 실수로 한 골을 허용했다. 시포의 롱패스가 한국 진영으로 날아왔는데, 골키퍼 최인영은 이 볼을 처리하려 페널티박스 바깥까지 뛰어 나왔다. 벨기에 공격수 드그리세가 딱 반걸음 빨랐다. 달려나오는 최인영을 의식해서 로빙볼로 띄워올린, 인사이드로 제기차듯 걷어올린 어정쩡한 슛이 우리의 골문 쪽으로 높고 느리게 비행했는데, 날아가는 공을 끝까지 쫓아가며 어떻게든 걷어내려 애쓰던 수비수가 바로 홍명보였다. 69분, 드 볼프의 장쾌한 15미터 중거리슛이 우리 골문 오른쪽 상단을 다시 한 번 흔들며 최종 스코어는 2-0.

98년 대회 때는 우리가 벨기에의 발목을 잡고 ‘간접복수’에 성공한 경우다. 역시 E조였던 당시의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한국은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패해 이미 탈락 확정.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0-0, 멕시코와 2-2로 비겨 2무승부 승점 2점. 멕시코는 1승1무 승점 4점에 5득점 3실점. 벨기에가 한국을 이기고 멕시코가 네덜란드에 패하면 무조건 벨기에 16강 진출. 벨기에가 한국을 세 골 차 이상으로 물리치면, 멕시코가 네덜란드와 비기더라도 벨기에 16강 진출. 벨기에가 한국을 두 골 차로 물리치고 멕시코가 네덜란드에 지면 벨기에 진출, 비기면 다득점 계산. 예컨대 벨기에는 한국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이었다. 비기면 그야말로 탈락이 확정되는.

6월 25일 생 에티엥의 홈인 파리 의 파르크 데 프랑스 경기장. 전반 7분 닐리스의 골이 들어갈 때만 해도 벨기에의 16강행은 틀림없어 보였다. 13분 코너킥에 이어 뒤로 흐른 볼을 논스톱으로 직격한 슛이 한국의 크로스바를 때릴 때만 해도 한국은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한국은 2패 후 프랑스에서 기술위원회를 열어 차범근 감독을 현지해임하고, 김평석 코치를 임시감독으로 삼아 지휘봉을 맡긴 ‘흔들리는 팀’이 아닌가. 그러나 축구는 역시 ‘예측이 불가능한’ 경기였다. 상대 공격수의 발길에 머리를 들이대며 온 몸으로 저지선을 구축하던 이상헌과 이임생의 ‘붕대투혼’이 태극전사들의 정신에 불꽃을 지폈다. 그래, 차기 월드컵 개최국이 3패로 물러선대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지. 86년 이탈리아 전부터 이어진 본선 6연패의 사슬은 이 경기에서 끊고 가야지.

71분, 왼쪽 깊숙한 지점에서 올라온 하석주의 프리킥을 유상철이 감각적인 슬라이딩 슛으로 밀어넣으며 1-1. 남은 시간 한국은 허둥대는 벨기에를 상대하며 충분히 추가골을 뽑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찬스도 많았지만 추가득점은 이뤄지지 않았다. 종료휘슬이 울리며 그대로 멕시코의 16강 확정. 90+5분에 에르난데스의 동점골이 터지며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와 2-2로 비긴 멕시코는 한국 대 벨기에 전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했지만, 한국 대 벨기에 전이 끝난 90+3분에 이미 멕시코 벤치와 국민들은 ‘16강 진출 확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논어에 나온다.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호인불호학 기폐야우)
어진 것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다.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호지불호학 기폐야탕)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독선(獨善)이다. 17/8

1990년만 해도 한국축구는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다. 유럽리거는 고사하고, 외국클럽 소속 선수나 경험자를 단 한 명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외딴 섬’ 같은 나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세계 축구를 현장에서 배우고 접할 기회가 없었다. 사정이 그랬기에 우리 식으로 실력을 기르면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는 통할 수 있으리라 품었던 막연한 믿음이 우리가 가졌던 자신감의 전부였다. 우물 밖의 세상은 역시 넓고 험했다. 9승 2무, 30득점 1실점이라는 아시아 예선 기록을 보고 유럽 전문가들이 ‘미지의 가능성이 충만한 팀’이라고 추어주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3전 3패, 1득점 6실점으로 쓸쓸한 귀국. 그 때 그 시절로부터 24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 시간을 KTX처럼 달려왔다. 홍명보의 경험과 복수심, 그리고 이제 ‘우물 안’을 벗어나 마침내 ‘선진화’에 눈 뜬 한국축구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파리 북역 기차역에서 멕시코 응원단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그들이 부러워서 견디기 힘들었던 98년의 ‘추억’을, 브라질에선 이자까지 계산해서 벨기에에게 돌려줄 차례다.

사족(蛇足): 출전 선수 명단을 보며 옛 추억에 잠겨보자.

90년 벨기에 전: 최인영, 홍명보, 구상범, 최강희, 정용환, 박경훈, 노수진(이태호), 김주성, 이영진(조민국), 황선홍, 최순호.   

98년 벨기에 전: 김병지, 홍명보, 최성용(이임생), 이상헌(장현석), 이민성, 김태영, 유상철, 하석주, 김도근(고종수), 최용수, 서정원    

사족(蛇足) 2: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벨기에 사람은? 아마도 동화 속 인물인 ‘프란다스의 개’와 ‘네로’가 아닐까? 벨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의 플랑드르와 농업을 주로 하는 남부의 발룬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두 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프란다스’는 ‘플랑드르’의 일본식 발음이다. 발룬 지방에 사는 네로가 아침마다 우유배달을 다니던 도시가 플랑드르 지역의 안티워프다. 벨기에식 발음은 안티베르펜. 다이아몬드 집산지로 도매상과 가공업자들이 몰려있는 이 아름다운 고도(古都)에 축구로 발을 디딘 한국인이 있었다. 2000/01 시즌 안티워프 FC에서 활약하며 10골을 득점(PK 3골 포함)한 설기현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홍명보호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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