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집 맞은편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어떻게 내 집 위치를 알았지?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최근 영국 축구 매체 포포투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게 된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히딩크와 한국 축구의 첫 접점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마르세유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열린 한국전 전날, 네덜란드는 한국 대표팀 훈련 시간 직전까지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히딩크는 "우리 선수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더 훈련하게 두자고 생각했다"며 "한국 선수들은 경기장 옆에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네덜란드의 훈련 시간이 예정 시각을 넘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가 다가와 시간을 알렸지만 히딩크는 "5분만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5분은 10분이 됐고, 다시 15분까지 늘어났다.
히딩크는 당시 한국 대표팀이 별다른 항의 없이 기다린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한국 감독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것이 당시 한국 문화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00년 11월, 히딩크의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매니저였다. 그는 자신이 암스테르담 암스텔 호텔에 머물고 있다며 히딩크의 집 맞은편에 있다고 했다.
히딩크는 "도대체 내 집 위치를 어떻게 알았고, 전화번호는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하기 위해 히딩크를 찾았다. 당시 한국 축구의 목표는 명확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반드시 16강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히딩크는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봤다.
그는 "그들이 '16강에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체면을 많이 잃는다'고 했다"며 "난 당시 한국의 FIFA 랭킹이 70위 정도였고, 월드컵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점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히딩크는 처음부터 감독직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 축구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대표팀의 클럽팀화였다.
히딩크는 "월드컵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며 "대표팀을 클럽팀처럼 훈련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내 리그에서 뛰던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 휴가를 받아 1년에서 18개월가량 함께 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단기간 소집과 해산을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월드컵에서 세계 강호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두 번째는 세계를 돌며 강팀들과 맞붙는 일이었다.
히딩크는 "당시 한국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은 팀들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며 "그 경기에서 이기면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월드컵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대를 만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수들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접해야 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쓴맛도 보고 도전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은 세대교체였다.
히딩크는 당시 한국 축구가 30대 중반 이상의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봤다. 그는 "34세 이상의 선수들을 너무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팀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것은 한국 측의 반응이었다.
히딩크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들이 실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한국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그렇게 열정적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약 열흘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매니저는 히딩크에게 다시 호텔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한국 축구가 히딩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히딩크는 "그는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언제든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경기를 치를 항공료도 마련됐고, 계약서까지 준비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히딩크는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싶었다. 그의 결단력과 무언가를 이루려는 열정이 내게 자극이 됐다. 난 서울로 떠났다"고 말했다.
히딩크의 결단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꿨다. 그는 2001년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해외 전지훈련, 강호들과의 평가전, 과감한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였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