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04.22 14:10

[엑스포츠뉴스=김경민 기자] 한국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 외견적으로 프린스는 성소수자로 보일 수도 있다.
유달리 작은 157cm의 키에 짙은 눈화장, 그리고 언제나 신고 나오는 높은 하이힐과 반짝이는 의상들. 그리고 성을 찬미하는 그의 가사들은 80년대만 해도 고매하신 한국 음악계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때문에 프린스의 음악은 건전하고 활기차야 했던 5공 시절 한국 음악계에서는 절대 환영 받지 못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지만 마이클 잭슨과 비교해서는 한켠에 있던 가수였다.
하지만 적어도 북미 음악시장에서 프린스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수다. 1978년 데뷔해 7번의 그래미상, 그리고 1억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린 프린스는 상업적인 성공을 차치하더라도 현대 팝 음악계에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군림해 왔다.
프린스는 음악의 트랜드가 수도 없이 변하던 현대 음악계에서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려왔다. 그의 음반은 실패하는 적이 없었다. 팝과 록, 재즈, 블루스, 일렉트로닉을 넘나드는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아왔다.

반면 인간 프린스 로저스 넬슨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다. 각종 기행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1996년 백댄서인 마이테 가르시아와 결혼했지만 첫 아들 그레고리를 불치병으로 잃으면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2000년 이혼했다.
가르시아는 피플닷컴에 "나는 그 당시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며 "그는 이제 우리 아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며 프린스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연예매체 TMZ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프린스의 지인들은 그가 수개월 전 부터 회고록을 작성해 왔다고 밝혔다. 프린스는 벌써 50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을 완성한 상태로 알려졌다. 실제로 프린스는 21일(이하 현지시각) 사망 전 부터 건강이 악화됐었다.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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