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5-12-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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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지미 별세…4번의 결혼 '원조 신여성'→700편 다작 '파란만장' 인생 [엑's 이슈]

기사입력 2025.12.11 18:03

故김지미
故김지미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원로배우 故김지미(본명 김명자)가 세상을 떠났다. 과거 원조 신여성의 행보를 보이며 다작으로 연기 활동에도 매진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이 재조명 중이다.

김지미는 7일 오전 4시 30분 경 미국 LA에서 세상을 떠났다. 10일 미국에서 화장 절차를 마쳤고, 12일 장례가 마무리 될 예정이다.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유족과 함께 영화인장을 논의했지만, 장례를 조용히 마무리하길 원하는 유족의 뜻에 따라 한국에서는 별도의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故김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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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충남 대덕군 출생인 고인은 1957년 故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빼어난 미모와 강인한 성격으로 인기를 얻으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어왔다.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등 거장들과 연이어 호흡을 맞췄다. 1990년대까지 출연한 작품만 무려 700여 편에 달한다.

故김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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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연기력과 스타성을 바탕으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다양한 영화 시상식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14년에는 제15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 2016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9년에는 제9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예술인 부문을 수상했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던 당시의 사회상과는 반대로 자유로운 연애와 4번의 결혼을 겪었다. 개인사를 공개하는 것에도 거리낌 없는 주체적인 삶을 살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신여성'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故김지미
故김지미

故김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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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이던 1958년에는 12살 연상의 홍성기 감독과 결혼 후 4년 만인 1962년 이혼했다. 이후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이자 유부남이었던 최무룡과 결혼, 이혼을 겪었고 가요계 스타였던 나훈아와는 1982년까지 6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1991년에는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지만 2002년 이혼했다.

'영화계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 특별한 배우'이자, '대장부'로 불리며 제작가와 영화 행정가까지 영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1987년에는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1986), '아메리카·아메리카'(1988), '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을 제작했으며 1999년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2010년에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故김지미
故김지미


1990년대 초반 이후 실질적인 작품 활동은 사실상 중단했고, 최근에는 미국 LA에 거주하며 영화인들과 교류해왔다.

6년 전인 2019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오픈토크 '김지미를 아시나요'에 참석해 "저는 여러분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고 배우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또 "저는 영화인의 활약에서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기자로서 모든 것을 끝을 내도록 노력해라'고 전하고 싶다.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로 칭호를 받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1일 오후부터 14일까지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 김지미를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생전 고인의 모습도 LED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연합뉴스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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