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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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월드스타', 韓 영화 세계에 알린 50년 배우의 삶 [강수연 별세②]

기사입력 2022.05.08 11:50 / 기사수정 2022.05.10 13:19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故강수연은 4세 나이에 아역으로 활동을 시작해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해외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최초 '월드스타'의 수식어를 얻은 배우다.

1966년생인 고인은 4세이던 1969년, 동양방송(TBC)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일약 하이틴 스타로 떠오른 뒤, 고등학교 졸업 후 영화 '고래사냥'(1985)으로 20대를 맞이했다. 이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높은 인기를 모았다.

'월드스타'라는 말은 50여 년의 배우 생활을 이어 온 강수연을 대표하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한국 배우 최초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이름을 떨쳤다. 이는 전도연이 2007년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유일했던 세계 3대 국제영화제(칸·베니스·베를린)에서의 수상이다. 



임권택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에서는 비구니 연기를 위해 삭발까지 기꺼이 소화하는 등 열정 넘치는 연기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현재는 위상이 많이 줄었지만, 당시엔 세계 3대 영화제에 버금갔다. 강수연의 수상은 다시 한 번 '월드스타' 호칭에 상기시켜줬다.

국내에서도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을 포함해 10개가 넘는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강수연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베를린 리포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활약을 펼치며 족적을 남겨 온 강수연은 2001년 TV로 돌아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할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며 그 해 '여인천하'를 함께 한 전인화와 함께 공동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인천하' 이후 다소 활동이 줄어들었던 2000년대에는 2006년 영화 '한반도' 카메오, 2007년 MBC 드라마 '문희' 출연으로 대중을 만나 왔다.

이후에는 영화 행정가의 모습으로 영화제 등 영화와 관련된 현장에서 고인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강수연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아 일했다. 


이후 수년간 계속된 갈등과 파행에 책임을 지고 2017년 물러났으며, 이후 지난 해 10월 열린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며 4년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장편으로는 '달빛 길어올리기'(2010), 단편으로는 '주리'(2013)가 마지막 작품 활동이었던 강수연은 지난 해 7월 넷플릭스 영화 '정이' 출연 소식을 전하며 스크린 복귀를 알렸지만 5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정이'는 고인의 유작으로 남게 됐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각 드라마·영화 스틸컷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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