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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 행복한 내셔널리거로 사는 법

기사입력 2007.12.16 00:46 / 기사수정 2007.12.16 00:46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기자]  2004년 11월 20일, 2004년 K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그 중 전남 광양 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과 성남의 경기는 조금 특별했다. 그 당시 성남은 2003년 K리그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와 K리그를 병행하고 있었고, 경기 날이 겹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고심 끝에 성남은 K리그를 포기했다. K리그는 이미 우승의 꿈이 멀어졌지만, AFC는 희망이 남아있었다. 성남은 1군 전원을 데리고 원정길에 올랐다. 그리고 K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2군들이 대신 치르기로 했다. 그 당시 성남의 2군은 2군이라 부르기 아까웠다. 이름을 댄다고 해서 바로 알만한 유명한 선수는 없었지만, 안익수 코치의 노련한 조련으로 그 어느 팀보다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팀이 당시의 성남 2군이었다.

경기에 출전할 2군 선수들 중에는 그 경기가 프로 데뷔인 선수들도 있었다. 모두 2군 리그를 치를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그 가운데, 조성래도 있었다.

1979년생으로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홍익대를 졸업한 뒤 마땅한 팀을 구하지 못하고 바로 경찰청으로 입대, 군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청에서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기다리던 그를 제대 후 성남에서 불러 들였다. 그 당시 성남의 스카우터가 조성래의 대학 시절 은사였던 것.

그렇게 프로생활을 시작한 조성래는 시즌 초반 종종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보이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가능성은 단지 가능성일 뿐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는 어려웠고, 그는 점점 잊혀 갔다. 그렇게 혹독한 프로 첫 해 신고식을 치르던 그에게 전남과의 경기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다.

이싸빅과 중앙 수비를 맡은 그는 90분 내내 전남의 파상공세를 착실히 막아 나갔다. 그렇게 전광판의 시계는 멎었고, 성남은 승리와도 같은 무승부를 얻는 듯했다. 그러나 단 한순간의 실수로 성남은 이따마르에게 골을 허용했고, 그 실점의 주인공은 바로 조성래였다. 경기 종료 후 안익수 코치는 평소보다 강하게 조성래를 질책했다.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한 그를 타박하는 말 속엔 다 지킨 무승부를 빼앗긴데 대한 아쉬움이 훨씬 크게 묻어나 있었다. 내내 안익수 코치의 타박을 묵묵히 듣던 그의 입에서도 아쉬운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그 경기 후 성남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그를 내셔널리그 시상식에서 만났다. 그는 그해 겨울 방출 수순을 밟고 K2리그(現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 곳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보였지만, 그에겐 늘 프로와 더 큰 무대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JFL의 문을 두드렸다. 시즈오카 FC에서 활약한 그는 부산교통공사에 역수출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그가 밟은 잔디는 프로의 것이 아닌 내셔널리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프로에 대한 욕심을 가지진 않는다. 다만, 지금 그가 서있는 그 곳에서 행복한 선수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노란 유니폼을 입고 항상 얼굴을 찡그리며 경쟁을 위해 살던 그는, 이제 즐기는 축구를 위해 살고 있다. 남을 이기기 위한 축구가 아닌 내 스스로를 이기는 그런 축구를 하기 위해 말이다.  시상식장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 시종일관 걸려있던 그 미소가 그런 그의 마음을 투영하는 듯 했다.

나를 이기고, 즐기는 것. 
그 것이 행복한 이 남자 조성래가 내셔널리거로 사는 법이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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