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이토만 니시자키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연습경기, 4회말 한화 성지훈이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엑스포츠뉴스DB
(엑스포츠뉴스 일본 오키나와, 조은혜 기자) 레전드의 번호를 달고, 스스로 기회를 잡았다. 한화 이글스 성지훈이 1군 데뷔라는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호주 멜버른에서의 1차 캠프를 마치고 일본 오키나와로 이동해 2차 캠프를 진행 중이다. 연습경기를 치르며 실전 감각을 올리는 2차 캠프는 주전 선수들 위주로 명단이 꾸려지기 마련. 이 과정에서 퓨처스 캠프로 이동하는 인원들도 적지 않다. 한화 역시 예정대로라면 더 많은 인원이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김경문 감독은 1차 캠프 막바지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치른 뒤 "싸우는 모습이 좋았던 투수 몇 명을 더 데려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중 한 명이 좌완투수 성지훈이었다. 광주제일고와 동아대를 졸업한 성지훈은 2023년 육성선수로 한화에 입단, 지난해 등록선수로 전환됐다. 작년에는 1군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마무리 캠프를 훌륭하게 소화했고, 올해 처음으로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15일 호주전, 1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2차 캠프 명단까지 이름을 올렸다.
성지훈은 지난 23일 지바롯데전에서 1⅓이닝을 던져 출루를 허용했으나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고, 26일 KT전에서도 류현진 뒤에 올라와 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지만 황재균에게 3루수 땅볼, 허경민에게 병살타를 이끌어내고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1군 경험이 없는 성지훈에게는 멜버른과 오키나와 캠프는 처음인 것들이 많다. 호주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는 KBO리그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관중이 들어찼는데, 성지훈은 "확실히 높은 레벨과 경기를 하니까 재밌다"면서 "행복했다. 공식적으로 데뷔한 건 아니지만 사람이 많은 데서 던지니까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26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연습경기, 3회초 한화 성지훈이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엑스포츠뉴스DB
성지훈은 올해 등번호로 57번을 단다. '좌완 레전드' 정우람 코치가 선수 시절 내내 달았던 상징성이 있는 번호였다. 성지훈은 호주전을 마친 뒤 "여기 와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 '57번 달고 못 던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웃기도 했다.
성지훈은 "사실 57번을 달고 싶었는데 못 달 줄 알았다. 그런데 나까지 와서 달게 됐고, 정우람 코치님께 연락을 드렸다. 코치님께서 나를 '성똘'이라고 부르신다. 공을 잡으면 30개 투구수를 정해놔도 70개, 80개 던지니까 '또라이'라고 하시는데, 전화를 받으시고는 '57번 성똘이 달기는 좀 그런데?' 하시고는 달게 됐으니까 열심히 해 봐라 말씀해 주셨다"고 전했다.

26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연습경기, 3회초 한화 성지훈이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엑스포츠뉴스DB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57번'으로 던진 경기 후에도 정우람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지훈은 "57번 달고 첫 단추를 잘 꿰맨 것 같아서 끝까지 잘 마치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먼저 지적 받고 시작했다. 중계를 보고 계셨더라. 2아웃 이후에 몸에 힘이 들어가서 볼넷을 준 것 같다고 하셨다"고 웃은 뒤 "그리고 좋았다고, 시즌 끝까지 가져가서 퓨처스에 오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고 얘기했다.
올해 목표는 당연히 1군 마운드를 밟는 것. 자신감도 있다. 성지훈은 "작년 목표가 등록 선수였고, 첫 등록이 되면서 '1군 데뷔 해보자' 했는데 아쉽게 못했다. 올해는 57번이니까 57경기 나가도록 하겠다"고 웃었다. 올해 반드시 1군에서 볼 수 있겠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공을 믿는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등에는 더없이 든든한 번호가 새겨져 있다.
사진=일본 오키나와, 김한준 기자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