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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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아메리까노(5)] 중남미 축구의 非 중남미 선수들

기사입력 2010.09.24 17:37 / 기사수정 2010.09.24 17:37

윤인섭 기자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는 매주 금요일마다 남미 축구 전문 기자 윤인섭 기자의 '풋볼 아메리까노'를 연재합니다. '아메리카'는 많은 경우 미국을 지칭하지만 남미에서 말하는 '아메리까'는 많은 경우 미국을 제외한 범 라틴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풋볼 아메리까노를 통해 매주 살아있는 남미 축구에 대한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지난 23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포르투 알레그리의 올림피쿠 모누멘탈에서 벌어진 브라질 세리에A 24라운드, 그레미우와 플라멩구의 경기는 홈팀 그레미우의 승리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플라멩구가 1-2로 뒤진 후반 40분, 그레미우 진영 미드필드 후방에서 레안드루 모우라가 전방으로 침투패스를 넣어줬고 플라멩구의 10번이 유려한 볼 트래핑으로 골키퍼마저 제치고 팀에 천금 같은 동점골을 선사했다. 
 
외국인으로서 브라질 축구의 상징 같은 클럽, 플라멩구의 10번을 차지한 데얀 페트코비치(세르비아)가 바로 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이다.
 
올해로 브라질리그에서 열세 번째 시즌을 맞는 페트코비치는 남미에서 활약하는 유럽 출신 선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지금이야 남미에서 거의 유일한 유럽 국적의 선수지만 페트코비치가 브라질에 발을 들인 1997년은 루마니아나 유고슬라비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의 선수들이 중남미 대륙으로까지 활동 폭을 넓히던 마지막 시기에 해당했다.
 
게오르게 하지, 흐리스토프 스토이치코프 등과 1990년대 발칸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일리에 드미트레스쿠와 당시 루마니아 대표팀의 수비 기둥이었던 미오드락 벨로데디치는 선수 생활의 말년을 멕시코에서 보냈고 불가리아의 1994년 월드컵 4강 멤버였던 벨코 요토프는 자신의 전성기를 아르헨티나에서 보냈다. 
 
또한, 프랑수아 오맘비크, 알폰세 차미(이상 카메룬)같은 아프리카 선수들도 1990년대 중남미 축구시장의 세계화에 이바지했고 현 카메룬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피에르 웨보는 자신의 프로생활을 우루과이 명문팀 나씨오날에서 시작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지난 2001년, 보카 후니오르스에 입단했던 현 수원 삼성의 공격수, 다카하라 나오히로를 꼽을 수 있다.
 
시기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 1960-70년대를 살펴보자면 더욱 굵직한 이름들을 만날 수 있다. 에우세비우, 베른트 슈스터, 그레고르츠 라토 같은 슈퍼스타들은 자신의 축구 인생 황혼기를 위해 멕시코 무대를 선택했고, 유로 2008 스페인의 수석코치였던 호세 우파르테는 1964년까지 자신이 프로선수로 데뷔한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했다.
 
이번 주 [풋볼 아메리까노]는 페트코비치와 같은 중남미 축구의 이방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중남미 축구에 대한 강한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깨뜨릴 수 있는 것이야말로, 중남미 축구를 논함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피에르 웨보(공격수, 국적: 카메룬, 현 소속팀: 마요르카)
 
사무엘 에투와 함께 카메룬 대표팀의 공격을 이끄는 선수로서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도 조별리그 두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웨보는 특이하게도 남미대륙에서 프로축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 2000년, 18살의 나이에 우루과이 양대 명문, 나씨오날에 입단한 웨보는 입단 3년째인 2002년,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국내리그에서 14골을 득점했을 뿐 아니라 코파 수다메리카나(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이은 남미 제2 권위의 클럽 대항전)에서 4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소속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우루과이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2003년 겨울 스페인에 진출했고 CD 레가네스와 오사수나를 거쳐 현재, 마요르카에서 활약하고 있다. 라 리가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활약하는 아프리카 선수 중 하나이다.
 
2. 프랑수아 오맘비크(공격수, 국적: 카메룬, 2000년 은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킨 헤딩골의 주인공으로 세계 축구 무대에서 아프리카 돌풍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카메룬 대표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994년 미국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내리 참가했고 A-매치 75경기 출전, 45득점의 풍부한 국제 경험을 가진 스트라이커이다.
 
주로 프랑스 무대에서 활약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 끝나고 멕시코의 명문 클럽, 클럽 아메리카로 이적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입성했다. 아메리카(1994-97)를 거쳐 아틀레티코 유카탄(97), 푸에블라 FC(1999) 등 멕시코 무대에서 5시즌을 보냈고 64골을 득점했다. 특히 1994-95시즌에는 33골로 득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3. 알폰세 차미(공격수, 국적: 카메룬, 2005년 은퇴)
 
로저 밀러, 오맘비크와 1990년대 카메룬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던 선수이다. 카메룬 대표로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고 A-매치에 57경기 출전에 21골의 득점을 기록했다.
 
오맘비크처럼 미국 월드컵이 끝나고 아르헨티나 명문팀, 보카 후니오르스와 계약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입성했다. 보카에서 세 시즌을 뛰는 동안 11골을 득점했지만 아쉽게도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후 독일의 헤르타 베를린(1997-99)을 거쳐 UAE, 스코틀랜드, 프랑스, 러시아, 중국, 레바논 등 다양한 리그를 전전한 끝에 지난 2005년, 34세의 나이로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4. 데얀 페트코비치(공격형 미드필더, 국적: 세르비아, 현 소속팀: 플라멩구)
 
이번 주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선수이다. 지난 1997년, 비토리아에 입단한 이래, 중간의 몇 차례 외도(1999-2000: 베니치아, 2003: 상하이 선화, 2004-05: 알 이티하드)를 제외하고 꾸준히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세르비아 양대 명문, 크르베나 즈베즈다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 세비야 등 스페인 라 리가의 굵직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페트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로도 A-매치에 7경기 출전한 경력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 경쟁에 실패, 세비야와 라싱 산탄데르로 임대 생활을 전전하다 1997년, 브라질 북부의 대표적 클럽, 비토리아로 이적하며 기나긴 브라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토리아를 시작으로 플라멩구, 바스쿠 다 가마, 플루민넨시, 상투스, 아틀레찌구 MG 등 다수의 브라질 명문 클럽에서 활약한 페트코비치는 1999년 코파 두 브라질(브라질 컵) 득점왕을 비롯, 2004, 2005, 2009시즌에는 브라질 세리에-A 베스트 11에 뽑히며 남미 최고의 선수로 도약했다. 또한, 지난 2009년에는 플라멩구의 브라질 세리에-A 제패에 지대한 공을 세우며 ‘브라질 전국리그 제패’라는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도 했다.
 
38세라는 나이 탓에, 예전만큼의 체력을 보이지 못하지만, 올 시즌 선발과 교체를 가리지 않고 20경기에 출전, 4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5. 그레고르츠 라토(윙, 국적: 폴란드, 1984년 은퇴)
 
1974년 서독 월드컵 득점왕 그레고르츠 라토는 멕시코의 휴양도시 칸쿤에서 축구선수로서의 말년을 보냈다. 바로 칸쿤을 연고지로 하는 멕시코 남부의 강자, 아틀란테에서 말이다. 
 
서독 월드컵에서 7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이후 월드컵 득점왕의 6골 징크스(2002 한일 월드컵 호나우두에게 깨짐)를 세웠던 라토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조국 폴란드를 3위에 올려놓고 아틀란테로 이적, 선수 생활을 은퇴하는 1984년까지 활약했다. 비록, 30대에 이르러 시작한 멕시코 무대에서 예전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두 시즌 동안 15골을 득점하며 1983년, 아틀란테의 북중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선사하기도 했다.
 
6. 일리에 두미트레스쿠(윙, 국적: 루마니아, 1998년 은퇴)
게오르게 하지, 플로린 라두치오위 등과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루마니아 축구의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미국 월드컵의 활약을 발판으로 이루어진 서유럽에서의 축구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토트넘, 세비야, 웨스트햄 등 잉글랜드와 스페인에서 활약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적응에 실패한 끝에, 1996년 여름, 멕시코의 명문 클럽, 클럽 아메리카와 계약하며 새로운 대륙에서의 도전을 맞이했다.
 
멕시코에 도착해서도 두미트레스쿠의 역마살은 그치지 않았다. 두미트레스쿠는 바로 다음 시즌에 휴양도시 칸쿤을 연고지로 하는 아틀란테로의 이적을 감행했고 역시 한 시즌을 보내고 자신이 선수 생활을 시작한 슈테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하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비록 멕시코에서 1년 반이란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두미트레스쿠는 안정적으로 경기에 출전하며 서유럽 시절보다 예전의 기량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7. 시릴 마카나키(미드필더, 국적: 카메룬, 1997년 은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이 8강의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카메룬의 중원에 튼실한 버팀목이 된 선수였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스라엘 무대를 거쳐 1994년, 에콰도르의 4대 명문 중 한 팀인 바르셀로나SC로 이적했다. 1996년 자신이 선수생활을 시작한 프랑스의 가젤렉 아작시오로 이적했지만, 이듬해 다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에콰도르에서 두 시즌 동안 9골을 기록했고 바르셀로나는 마카나키가 활약한 두 시즌 모두, 에콰도르리그를 제패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자국리그 우승이 바로 1997년이다.
 
8. 피리(수비수, 국적: 스페인 1982년 은퇴)
 
스페인의 베켄바우어로 불리던 선수로서 1960-70년대,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의 수비라인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수비수이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10회의 자국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66년에는 소속팀의 유럽 챔피언스 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을 이끌었다. 스페인 대표팀으로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했고 A-매치 41경기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0년, 35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 정리를 위해 멕시코의 푸에블라로 이적했고 두 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9. 미오드락 벨로드디치(수비수, 국적: 루마니아 2001년 은퇴)
 
1990년대 루마니아 공격진에 게오르게 하지가 있었다면 수비라인에는 벨로드디치가 있었다. 185cm의 건장한 스위퍼로 미국 월드컵에서 루마니아의 끈질긴 수비라인을 지휘, 루마니아의 날카로운 역습에 든든한 배후가 되었다. 루마니아 대표로 1994년 미국 월드컵과 유로 1996, 2000에 참가했고 슈테우아 부쿠레슈티(1985/86)와 크르베나 즈베즈다(1990/91)에서 각각 한 차례씩 유럽 챔피언스 컵 우승을 경험했다.
 
1996년, 4년간의 스페인 생활(발렌시아, 바야돌리드, 비야레알)을 정리하고 멕시코의 아틀란테에 입성했다. 멕시코에서 두 시즌 동안 활약했고 팀의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로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10.   이브라힘 세카갸(수비수, 국적: 우간다 현 소속팀: 레드 불 잘츠부르크)
 
우간다 대표팀의 주장이자 오스트리아 최강 레드 불 잘츠부르크의 주축 수비수이다. 2001년 자국리그 캄팔라 FC에서 아르헨티나 2부리그 아틀레티코 라파엘라로 이적하며 아르헨티나에서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페로카릴 오에스테를 거쳐 2005년, 디에고 마라도나의 친정팀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노스로 이적하며 아르헨티나 1부리그에 발을 디뎠다.
 
비록 25세라는 늦은 나이에 1부리그로 입성했지만 186cm의 큰 키와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세카갸는 아르헨티노스의 주전 수비수로 성장했고 2007년에는 레드 불 잘츠부르크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 입성에 성공했다. 레드 불 잘츠부르크의 지난 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연패의 주역 중 한 선수이다.
 
11.   토마스 은코노(골키퍼, 국적: 카메룬 1997년 은퇴)
 
브루스 그로벨라(짐바브웨)가 잉글랜드에서 아프리카 출신 골키퍼의 우수함을 증명했다면, 스페인에는 토마스 은코노가 있었다. 은코노는 1982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0년간 에스파뇰의 골문을 지키며 리그에서 241경기에 출전했다. 현재 에스파뇰의 골문 역시, 은코노의 대표팀 후배, 이드리스 카메니가 지키고 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의 골문을 지킨 은코노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셉-앙투앙 벨의 백업 골키퍼로 참가했다. 미국 월드컵 종료 후, 볼리비아 명문 볼리바르로 이적했고 1997년 42세의 나이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코노가 활약한 4시즌 중, 볼리바르는 3차례나 자국리그 정상에 등극했다.
 
[사진: 데얀 페트코비치, 피에르 웨보, 이브라힘 세카갸(C) 페트코비치 개인 홈페이지, 마요르카, 레드불 잘츠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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