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인구 52만의 소국, 5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 대륙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인 카보베르데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카보베르데는 14일(한국시간) 카보베르데 프라이아에 위치한 카보베르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에스와티니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D조 10차전 최종전에서 후반전에 터진 다일론 리브라멘투, 윌리 세메두, 스토피라의 릴레이 득점으로 3-0 완승을 거두며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후반 3분 리브라멘투가 정교한 왼발 슛으로 균형을 깼고, 이어 후반 9분 세메두의 추가골로 다시 한번 에스와티니의 골네트를 출렁였다. 후반 추가시간 터진 스토피라의 쐐기골은 카보베르데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축하하는 축포였다.
이날 승리로 카보베르데는 10경기에서 7승2무1패, 승점 23점을 기록하며 승점 23점을 마크, 같은 날 앙골라와 0-0으로 비긴 아프리카의 강호 카메룬을 제치고 D조 1위를 유지해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카보베르데의 역사적인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한 호세 마리아 페레이라 네베스 대통령을 비롯해 카보베르데 국립경기장에 모인 1만5000여명의 팬들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네베스 대통령은 경기 후 "오늘은 카보베르데의 역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라면서 "우리는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꿈을 꿨다"는 소감과 함께 카보베르데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10월14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아프리카 예선은 54개국이 6개국씩 9개 조로 나뉘어 조별예선을 치른 뒤 각 조의 1위는 월드컵 본선으로 직행, 2위 팀들 중 성적이 좋은 4개 팀을 가려 아프리카 지역 플레이오프를 통해 본선행 막차에 탑승할 한 팀을 뽑는 식으로 진행된다.
카보베르데는 카메룬, 리비아, 앙골라, 모리셔스, 그리고 에스와티니와 함께 D조에 묶였다. 8번의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이 있는 카메룬 외에 대부분의 팀들은 뚜렷한 스타 플레이어도 없는, 이른바 '축구 약소국'에 속하는 팀들이다. D조는 조 편성이 끝났을 때부터 카메룬의 선전이 점쳐졌다. 카보베르데 역시 다른 카메룬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전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카보베르데는 예상을 깨고 앙골라, 리비아, 심지어 카메룬까지 차례대로 격파하면서 D조 선두를 지켰다. 지난 9월 카메룬과의 조 1~2위 전에서 1-0 신승을 거둔 게 결정적이었다. 카보베르데는 에스와티니전 승리를 포함해 최근 A매치 10경기에서 6승3무1패를 기록 중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현대 축구에서 또 하나의 아이슬란드가 탄생했다"면서 "경제력도, 스타도, 미디어도 빈약한 나라인 카보베르데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향해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며 카보베르데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조명했다.
'BBC'가 아이슬란드를 언급한 이유는 카보베르데가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였던 지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참가국 아이슬란드(약 33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카보베르데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25분의 1 정도인 소규모 국가다. 세계은행 집계 기준 인구는 약 52만 5000명 정도이며, 이는 경기도 파주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축구협회도 없었고, 1986년이 되어서야 FIFA에 뒤늦게 가입하며 세계 축구계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카보베르데가 축구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다. 2013년 당시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8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고, 호성적을 바탕으로 100위권 밖에 있었던 FIFA 랭킹을 2014년 2월13일 기준 27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지난 2023년에도 네이션스컵 8강에 진출한 카보베르데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에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저력을 보여줬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에 참가한 이후 무려 7번째 시도 만에 거둔 성공이었다.
포트4 배정이 유력한 카보베르데는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약체로 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만한 상대는 아니다.
로강 코스타(툴루즈FC), 조반 카브랄(올림피아코스), 라루스 두아르트(흐로닝언) 등 엄연한 '유럽파'들도 보유하고 있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베베(라요 바예카노) 역시 카보베르데로 귀화해 국가대표로 활약 중이다. 한때 FIFA 랭킹이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 적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1승 제물'로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진=연합뉴스 / FIFA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