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우진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MLB)가 2026시즌부터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을 본격 도입한 가운데, 베테랑 심판 출신 인사가 이에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심판의 존재 가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지난 26일(한국시간) 보도를 통해 1975년부터 1999년까지 MLB 심판으로 활동했던 리치 가르시아의 발언을 집중 조명했다.
가르시아는 ABS 챌린지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강한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건 심판들에게 굴욕적인 일이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MLB가 말하는 건 결국 '나는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며 "야구를 모르는 컴퓨터가 대신 측정한다는 것 아니냐"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시즌부터 MLB에 도입된 ABS는 12대의 호크아이 카메라를 기반으로 판정을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각 팀은 경기당 2회의 챌린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성공 시 기회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연장전에 들어가면 추가 기회도 주어진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우려는 단순한 ‘자존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판정이 뒤집히는 장면이 반복될 경우, 심판의 권위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ABS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쏟아낸 가르시아는 과거 결정적인 판정 논란의 중심에 섰던 심판이다. 그는 1998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마크 랭스턴이 뉴욕 양키스의 티노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던진 2B 2S 상황에서의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지 않아 큰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이어진 다음 공에서 마르티네스는 승부를 뒤집는 만루홈런을 터뜨렸고, 당시 양키스는 이 장면을 기점으로 시리즈 흐름을 완전히 가져오며 4연승 스윕 우승을 완성했다.
이로 인해 일부 야구 팬들은 "가르시아 당신이 ABS를 비판할 자격이나 있느냐"는 비판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데이터상 심판의 정확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MLB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 시즌 빅리그 심판의 판정 정확도는 92.83%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오심도 10.88개로, 2016년(16.58개)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
그럼에도 '완벽함'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전직 심판 테드 배럿은 "젊은 세대는 기술을 원하고, 판정의 확실성을 원한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다른 전직 심판 샘 홀브룩은 "심판은 인간이기 때문에 100% 완벽할 수 없다"며 "명백한 오심을 바로잡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핵심은 '정확성 vs 인간성'이다. 기술은 분명 판정 오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인간 심판의 역할과 권위를 잠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심판들이 ABS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향후 판정 스타일 자체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럿은 "심판들이 결국 ABS 기준에 맞춰 판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짚으며 제도 변화가 경기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 KBO리그의 경우 ABS를 2024시즌부터 세계 최초로 전면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챌린지 제도에 그치고 있는 MLB와 달리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전면 신기술에 맡긴 셈이다.
결국 MLB는 '인간 심판의 권위'를 일정 부분 유지한 채 기술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절충안을 택했고, KBO리그는 전면 자동화를 선택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ABS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판정 기술의 문제가 아닌, 야구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공정성과 정확성, 그리고 인간 심판이 만들어온 경기의 흐름과 권위 사이에서 해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신기술 도입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상,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ABS 시대를 맞이한 MLB가 어떤 균형점을 찾아갈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 사우스 코스트 투데이
이우진 기자 wzyfoot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