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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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클래식 감독들의 현역시절 어땠을까

기사입력 2013.06.26 14:25 / 기사수정 2013.06.26 14:29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K리그 올스타전을 지켜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K리그 클래식을 달구는 감독들의 현역시절은 어땠을까. 어린 축구 팬에게는 K리그 대표 감독들의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고 올드 팬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서정원 수원 감독 ㅣ 프로통산 292경기 65골, A매치 87경기 16골

서정원 감독은 현역 시절 100m를 11초 대에 돌파하는 날렵한 이미지가 강했다. LG치타스(현 FC서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당시 프랑스 르 샹피오나 스트라스부르에서 활약하며 '세오(SEO)'라는 애칭도 널리 얻었다. 이후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수원으로 K리그에 복귀해 안양과 수원의 ‘지지대 더비’를 뜨겁게 달구는 주인공이 됐던 바 있다.

수원에서 김호 군단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143경기 36골을 기록했다. 이후 K리그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리그로 진출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SV잘츠부르크와 SV리트에서 뛸 때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국내에서는 서서히 잊혀지는 듯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현지 언론은 "왜 세오가 월드컵에 나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월드컵에 두 번 참가했으며 1994 미국월드컵에서는 고정운과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하석주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프랑스 대회 당시 네덜란드전 0-5 참패를 겪자, 현지 언론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위협이 됐던 선수가 서정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전은 골키퍼 김병지의 선방과, 측면에 포진했던 서정원의 돌파가 유이한 위안 거리였다.

최용수 FC서울 감독 ㅣ 프로통산 234경기 119골, A매치 67경기 27골

최용수 감독은 현역 시절 '독수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상대 수비를 뚫고 공중볼을 곧잘 따내 붙은 애칭이다. LG치타스에서 시작한 선수생활은 상무를 거쳐 J리그에서 만개했다. 특히 제프 유나이티드(현 제프이치하라UTD)에서 73경기에 출장해 54골을 넣었다. 제프팬들은 '뉴밀레니엄'을 빛내준 공격수로 여전히 최용수를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

최용수 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한 이미지는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다. 한국은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지었는데 최용수는 최종예선 서전이었던 카자흐스탄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의 대표 공격수라는 사실을 각인시다. 또 '도쿄대첩'에서는 서정원, 이민성의 골을 각각 머리와 발로 어시스트했다. 올드 팬들은 최근 한국축구를 보며 최용수의 현역 시절이 아련했을지도 모른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했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조별리그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 교체 출전해 적지않은 기회를 잡았으나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당시의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최용수 감독은 지난 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주최한 'Team2002'와 'Team2012' 올스타전을 소화하며 한 맺힌 골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 ㅣ 프로통산 131경기 71골, A매치 103경기 50골

건국대 졸업 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바이어 레버쿠젠 2군에 입단했다. 첫 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이듬해 부퍼탈에서 9경기 3골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이후 K리그 복귀를 결정했다. 당시 완산 푸마(1994년 해체팀)에 지명됐으나 사상 초유의 1대8 트레이드를 통해 포항에 입단했다. 홍명보, 고정운, 박태하 등과 함께 포항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이후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 진출해 36경기 30골을 기록했다. 동시에 J리그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공격수 득점왕을 차지했다. 4번의 월드컵(1990,1994,1998,2002)에 나섰지만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는 악몽과 다름없었다. 미국 대회에서는 그나마 약체로 꼽혔던 볼리비아전에서 수많은 기회를 놓치며 상상하기 힘든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 대회 때는 개막 직전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러나 황선홍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으로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감각적인 '터치'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4강 신화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34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있고 기술이 좋다"며 황선홍 감독을 치켜세웠다. 황선홍 감독의 현역 시절, 부상이 없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더 뛰어난 활약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페트코비치 경남FC 감독 ㅣ A매치 43경기 6골


푸근한 인상의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지만 현역 시절 날카롭고 거친 미드필더였다고 알려졌다. 1964년 OFK 베오그라드에서 시작해서 1983년 은퇴까지 20년간 단 두 팀에서만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등번호 7번을 달고 뛰었다. 현대축구로 풀이하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앙에서 '볼 커팅'과 패싱 능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역 시절 두차례 메이저대회에 참가했다. 유로1968과 1974 서독월드컵 경험을 갖고 있다. 유로 때는 준우승을 했고 월드컵에서는 8강까지 올랐다. 조별리그서 우승후보였던 브라질과 무승부를 거뒀고, 2차전 자이르전에선 직접 골까지 기록하며 9-0 승리를 도왔다. 페트코비치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은 이른바 '냉전 시대'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동구권 3강으로 꼽혔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럽 명문팀에서 뛸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대표팀에서는 약 6년간 꾸준한 활약을 했다. 은퇴 후 '냉전 시대' 종식과 함께 다양한 리그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K리그 뿐 아니라 일본, 중국, UAE 리그를 거쳤으며 대표팀 사령탑으로도 2006 독일월드컵 당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서영원 기자 sports@xportsnews.com

[사진=서정원, 최용수 감독 ⓒ 엑스포츠뉴스DB]

서영원 기자 schneider19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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