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수원, 나승우 기자) 국가대표 데뷔 20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한 한국 여자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지소연이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지소연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여자부 최종전서 후반 25분 강채림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성공시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신상우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후반 40분 베테랑 장슬기의 골까지 더해 대만을 2-0으로 물리치고 2005년 이후 20년 만에 대회 정상에 등극했다.
지소연도 대표팀에서 첫 트로피를 들었다. 1991년생인 지소연은 2006년 A매치 데뷔 후 20년 동안 169경기를 뛰었으나 클럽과 달리 대표팀에서는 우승과 거리가 먼 선수였다.
아시안게임 동메달만 3개(2010, 2014, 2018)에 그쳤고,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오른 게 개인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에 임한 각오가 남달랐을 지소연은 첫 경기부터 대표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내며 베테랑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중국과의 1차전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추가시간 4분 환상적인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중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극적인 2-2 무승부는 이번 대회 우승을 위한 서막이었다.
대표팀은 일본과의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주고도 후반 41분 정다빈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둬 우승 희망을 살렸다.
앞서 대표팀 경기가 열리기 전 일본과 중국의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한국, 일본, 중국 세 팀이 1승2무, 승점 5로 동률을 이뤘고, 승자승을 우선으로 하는 대회 규정에 따라 대표팀이 다득점에서 일본과 중국을 앞서게 됐다.
이에 따라 대만전서 1골차 승리만 거두더라도 우승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전반전까지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우승 희망은 날아가는 듯했다.
이때 지소연의 발끝이 빛났다. 후반 25분 강채림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왼쪽 하단 구석으로 정확하게 찔러넣으며 자신의 A매치 74호골이자 경기 선제골을 터뜨렸다.
지소연의 골로 한숨 돌린 대표팀은 보다 여유 있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이후 장슬기의 추가 득점까지 터지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소연의 생애 첫 대표팀 우승이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마주한 지소연은 "대표팀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2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면서 "그 시간들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계속 버텨온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순간이다. 어린 선수들도 이번 우승을 경험 삼아 더 좋은 모습 보여야 한다"고 기뻐했다.
득점 직후 기뻐하지 않고 화를 내는 듯한 모습이었던 지소연은 "전반전에 너무 답답했다. 비기는 줄 알았다. 마지막 경기였고, 골 넣고 이겨야 하는 경기여서 선수들이 급했던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골을 넣으면 우승이라는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앞 경기(일본-중국)가 끝났다. 선수들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조금 더 낮췄으면 좋았을텐데 전반전까지 이어진 거 같다"면서 "차분하게 하자고 했는데 계속 이어져서 전반전 끝나고 소리 질렀다. 내가 화내는 걸 처음 겪는 선수들은 굉장히 놀랬다. 평소에 화를 안 내다가 냈다"고 밝혔다.
우승 세리머니 순간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지소연은 미리 선수들에게 아무도 손 대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고 털어놨다.
지소연은 "아무도 트로피에 손 댈 수 없었을 거다. 후반 35분 때 벤치에서 나왔는데 선수들한테 트로피 건들지 말라고 얘기했다. '언니'들이 들고 오는 걸로 얘기했다"면서 "지난 20년 동안 옆에서 박수만 쳤다. 이번에는 상대 팀이 많이 없어서 박수를 많이 못 받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눈물이 나야 정상인데 안 나더라. 소속팀에서는 해봤지만 대표팀에서는 우리 선수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린 적이 없어서 감격스러웠다. 좋은 성적 내서 이런 모습 더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상황에 대해서는 "솔직히 안 차고 싶었는데 '자신 있는 사람?'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라며 "이제 내가 없으면 다른 선수들이 차야 한다. 조금 더 적극성 있게 나섰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 뿐만 아니라 각자 팀에 돌아가서 자기 자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팀으로도 강해질 것"이라며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다음 소집 때 봤으면 한다"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