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1.27 15:24 / 기사수정 2011.01.27 15:25
[엑스포츠뉴스/무카스=허인욱 객원 칼럼리스트/무술전문위원]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유몽인이 살았던 당시 용맹이 있는 인물로 '신말주(申末舟, 1429~1503)'와 그의 현손 '신응담(申應澹)'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신말주는 공조참판으로 죽은 신장(申檣, 1382~1433)의 아들로 신맹주(申孟舟)·신중주(申仲舟)·신숙주(申叔舟)·신송주(申松舟)의 형제 중 막내였다.
그가 단종 2년(1454)년에 과거에 합격하자 형 신숙주가 축하연을 베풀어주기도 했다. 과거에 급제한 후, 그는 맑은 직이라고 칭하는 청직(淸職)을 두로 지냈는데, 형 신숙주가 세조를 도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데 첫 번째 가는 큰 공을 세우자 신말주는 병을 핑계대고 순창으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명칭을 귀래(歸來)라 하고 노년을 보냈다.
신말주는 젊은 시절 날래고 용맹이 빼어났다. 하루는 길이가 아홉 자(1자를 20cm 정도로 잡으면 1m 80cm이다)가 되는 병풍으로 몸을 둘러싸 팔다리와 몸만 간신히 들어가게 한 다음, 단번에 몸을 날려 그 병풍을 뛰어넘었다. 그에게 사작(乍作)이라는 노비가 있었는데, 그 또한 병풍 밖에서 병풍 안으로 뛰어 들어오니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시에 용맹으로 이름난 사람들 가운데 그 같이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성종실록'에는 신말주가 창원부사(昌原府使)로 임명되었을 때, 창원은 바닷가여서 무신만 보내는 곳이니 그가 그의 직을 바꿔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종은 신말주가 활쏘기를 잘하기 때문에 창원부사에 임명했다고 하며, 사양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문신임에도 활쏘기에 능하다는 점과 무신 직에 임명했다는 점에서 그이 무예 솜씨가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신말주의 현손 신응담의 용맹 또한 짝할 이가 드물었다. 그는 어느 날 신장이 8자인 사람의 정수리에 1자 남짓한 높은 관을 씌우고 그 관 위에 또한 1자쯤 되는 나무를 옆으로 누여 올려놓았다. 10자 정도 되니, 2m의 높이 앞에 선 신응담이 움직이지 않다가 단번에 몸을 솟구쳐 그 나무를 뛰어넘었다. 세상에서 용맹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에 미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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