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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은반 위의 무도] 아사다 마오의 코치인 타라소바의 치명적인 실수

기사입력 2009.10.19 04:24 / 기사수정 2009.10.19 04:2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8년 3월, 아사다 마오(19, 일본 츄코대)는 코치 없이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가 크게 넘어지는 실수를 범하며 약 8초 동안 안무 없이 빙판을 활주했다. 그러나 우승은 아사다에게 돌아갔고 부상에 시달린 김연아는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사다 마오의 새 코치로 부임한 이가 타티아나 타라소바(62, 러시아)였다. 전임 코치였던 라파엘 아르투니안에 이어 같은 국적의 러시아인이 아사다를 맡게 됐다. 아르투니안이 기대만큼 아사다를 성장시키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아사다의 안무를 담당하고 있던 타라소바의 영입은 올림픽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타라소바가 피겨 스케이팅 지도자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키워낸 제자들이 올림픽에서 무려 10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피겨의 전설로 남은 일리야 쿨릭과 알렉세이 야구딘도 모두 타라소바의 제자였다. 쿨릭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야구딘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페어와 여자 싱글에서도 금메달리스트가 속속히 배출됐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아라카와 시즈카(29, 일본)도 타라소바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2006년 올림픽까지 타라소바가 이룬 업적은 대단했고 타라소바의 명성은 아사다 마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사다는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맞춰서 성장해 왔다. 일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낸 타라소바에게 아사다 마오를 맡긴다는 것은 예정된 절차였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모았던 타라소바-아사다의 조합은 예상을 빗나가고 있다. 타라소바의 아사다의 어긋남은 올림픽 시즌의 첫 무대인 2009-2010 '에릭 봉파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검증되지 않은 전 시즌 작품을 그대로 가져온 온 타라소바

타라소바는 아사다가 2008-2009시즌에 연기했던 롱 프로그램인 '가면무도회'에 자부심이 있었다.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이 곡이 아사다 마오의 표현력을 살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2009시즌에서 가면무도회가 제대로 빛을 발휘했던 적은 없었다. 자국에서 벌어진 NHK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이 프로그램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매우 불안했던 연기였다.

점프 특별훈련에 들어간 타라소바와 아사다는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벌어진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가면무도회를 연기하던 아사다는 트리플 콤비네이션 부분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고 시즌 내내 이 프로그램을 깔끔하게 연기해내지 못했다.

홈 대회의 부담감을 안은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범했다. 김연아가 흔들렸기 때문에 아사다가 우승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가면무도회의 불안함은 4대륙 대회와 세계선수권까지 이어졌고 관객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타라소바는 이 곡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올림픽 시즌에 쇼트프로그램 곡으로 쓰면서 지난 시즌에 이루지 못한 것을 실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피겨계에서 이전의 썼던 곡을 새로운 시즌에 다시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쇼트프로그램으로 다시 태어난 '가면무도회'는 변신과 창의성이 결여돼 있었다. 크게 움직이는 손동작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고 깊이 있는 표정연기가 부족한 아사다는 이 장중한 곡을 끝내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주니어 시절부터 자주 사용했던 심플하고 다이내믹한 피아노곡이 아사다와 더욱 어울렸다. 프리스케이팅 곡인 '종'도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사다는 18일 저녁(한국시각)에 벌어진 '에릭 봉파르' 갈라쇼에 출연해 자신의 갈라 프로그램인 니콜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에 맞춰 경쾌한 연기를 펼쳤다. 간결하고 다이내믹한 곡에 맞춰 연기하는 아사다의 움직임은 '가면무도회'나 '종'보다 오히려 생동감이 넘쳐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안무, 트리플 악셀의 집착은 오히려 화를 불렀다

근래 피겨의 흐름을 보면 북미 선수들의 비상이 돋보인다. 특히, 탄탄한 스케이팅 스킬을 바탕으로 한 표현력은 주니어 선수들에게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채점제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흐름에 발맞춘 현상은 고무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김연아의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은 안무의 중요성에 대해 '창의성'을 강조했다. '전통이란 이름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언했다.

타라소바는 구채점제에 익숙한 인물이다. 오래전부터 자신이 쌓아온 노하우를 강하게 믿고 있는 그의 성향은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자신의 제자들이 음악사를 장식한 고전음악에 맞춰서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는 것을 아사다 마오에게도 주문하고 싶었다.

이렇듯, 자신의 노하우를 믿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다. 신채점제에 들어오면서 참신하고 세련미가 넘치는 안무들이 점점 호평을 받고 있다. 타라소바는 아사다에게 장중하고 깊이 있는 안무를 주문했지만 아사다에게 어울리지 않는 안무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트리플 악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악영향을 낳았다. 지난 시즌 동안 아사다는 철저한 점프 특별 훈련을 통해 트리플 악셀의 성공률을 높이려 했다. 트리플 악셀 뒤에 더블 룹을 넣고 다시 한 번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는 구성 배치는 타라소바가 내건 승부수였다.

그러나 트리플 악셀에 대한 집념은 작품 요소의 균형을 깨트렸다. 프로그램 구성 요소 중, 모든 초점이 트리플 악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점프의 성공 여부에 따라 프로그램의 명암이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말았다.

김연아는 이번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플립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 초반에 배치된 큰 점프 하나를 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특정 기술을 놓쳐도 다른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김연아에게는 무궁무진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아사다 마오가 극복해야 할 점은 트리플 악셀을 실패할 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특정 기술이 실패로 끝났을 때, 프로그램 수행능력이 무너지면 기복이 심한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타라소바는 기초점수를 높이기 위해 트리플 악셀 시도를 두 번으로 늘렸다. 트리플 악셀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커졌다. 결과적으로 특정 기술에 실패할 때, 대안 책이 없었던 아사다는 연기 도중 쉽게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마저 드러냈다.

김연아란 최고의 스케이터 때문에 빛이 가려졌지만 아사다 마오는 분명히 재능 있고 뛰어난 선수였다. 김연아가 두각이 나타내기 전인 주니어 시절의 아사다는 '미래의 세계 최고 선수'로 평가를 받았었다.

김연아는 브라이언 오서와 데이비드 윌슨이라는 최고의 스승을 만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나 전 코치인 라파엘 아르투니안과 결별하고 타라소바와 만난 아사다 마오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와 코치 간의 신뢰이다. 또한, 서로 믿음을 통해 나타난 창의적인 훈련이다. 오서와 윌슨은 김연아가 가진 다양한 재능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피겨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두 선수의 명암은 여기서 결정됐고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두 선수 간의 점수 격차는 점점 벌어져 나갔다. 올림픽 시즌 첫 대회에서 36점의 점수 차이가 낫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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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아사다 마오 (C) 엑스포츠뉴스 강운 기자, 장준영 기자 김연아, 브라이언 오서, 데이비드 윌슨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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