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우진 기자)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영화는 바로 1993년 개봉한 디즈니 영화 '쿨 러닝'이다.
이 작품은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눈 한 번 보기 힘든 열대 국가 선수들이 동계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자메이카 봅슬레이는 오랫동안 '동계올림픽의 이색 아이콘'으로 기억돼 왔다.
하지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금, 자메이카 대표팀은 더 이상 영화 속 이미지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서 자메이카는 총 3개 종목 출전권을 획득했다. 남자 2인승과 4인승, 그리고 여자 모노봅(1인승)까지 출전 범위를 넓혔다.
남자 2인승과 4인승에서는 셰인 피터가 파일럿을 맡고, 안드레 데이커스와 주니어 해리스 등이 푸시맨으로 나선다. 여자 모노봅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영국 대표로 출전해 8위를 기록했던 미카 무어가 국적을 변경해 자메이카 대표로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4일(한국시간)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은 더 이상 '쿨 러닝'의 향수에 기대는 팀이 아니다"며 "이번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은 '영감을 주는 존재'가 아닌, 실제 경쟁자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해당 매체는 자메이카의 4인승 썰매가 다름아닌 대한민국에서 제공된 장비라는 점에 주목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자메이카 대표팀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사용했던 4인승 썰매를 기반으로 이번 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당시 한국은 이 썰매를 타고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매체는 "장비와 예산 등에서 독일, 스위스 등 전통 강국과 격차가 큰 자메이카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가디언'은 "자메이카는 열대 섬나라로 자국 내에 봅슬레이 훈련 시설 자체가 없다"며 "선수들은 겨울 시즌 대부분을 미국 뉴욕 등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재정난 역시 만성적인 문제다. 기사에 따르면 일부 다른나라 관계자들은 자메이카를 여전히 '코믹에 불과한 팀'으로 취급한다. 이미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한 선수들조차 이런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자메이카는 최근 아메리카컵 시리즈에서 다수의 메달을 수확하며 꾸준히 세계 랭킹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다. 훈련 시설 부족, 재정난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자메이카봅슬레이협회 크리스 스토크스 회장은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것을 갖춘 팀은 아니지만, 이미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어떤 이미지를 씌우든, 트랙 위에서는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영화 '쿨 러닝'이 남긴 상징은 여전히 따라붙지만, 이번 올림픽 무대를 향한 자메이카 봅슬레이의 시선은 분명히 달라져 있다. 열악한 훈련 환경과 만성적인 재정난, 그리고 '이색 팀'이라는 고정된 시선 속에서도 이들은 실제 성과로 존재감을 증명해 왔다.
한국에서 제공된 4인승 썰매를 타고 다시 올림픽 트랙에 서는 이번 도전은 이제 현실의 경쟁 무대다. 자메이카 봅슬레이의 도전에 대한 평가는 영화가 아닌 올림픽 트랙 위에서 내려지게 될 예정이다.
사진=가디언 / 연합뉴스
이우진 기자 wzyfoot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