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8 20:22
스포츠

영구결번.... 무엇이 문제인가???

기사입력 2005.04.07 01:05 / 기사수정 2005.04.07 01:05

이석재 기자

1, 3, 4, 5, 7, 8, 9, 10, 15, 16, 23, 32, 37, 44...

이 숫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학시간에 배운 함수나 배열 같은 것도 아니고 로또 번호 중 빈도 높은 숫자 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다. 위의 숫자들은 바로 뉴욕 양키즈의 영구결번 번호이다. 무려 14개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100년이 넘는 양키즈의 역사에서 팬들로부터 기억되기 위해 남겨진 번호가 14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영구결번(Retired Number) : 은퇴한 유명선수의 등번호를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관습 또는 그 번호

영구결번의 사전적 정의다. 그런데 요즘 한국 프로야구에서 영구결번과 관련한 논란이 구단과 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현재 프로구단 전체의 영구결번은 없고 각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영구 결번한 번호가 모두 4개가 있다. 1986년 사고사를 당한 OB의 김영신(54번)을 시작으로 1996년 해태의 선동열(18번), 1999년 LG의 김용수(41번)의 번호가 결번 처리되었으며, 마지막으로 2002년 두산이 1997년 은퇴한 박철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21번을 결번 처리한 것이 그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영구 결번이 각 팀의 구장 외야 펜스에 나란히 기록되는 것과 달리 우리 나라의 경우는 엘지와 두산에서 각각 김용수와 박철순의 유니폼 모양을 한 걸개를 외야 제일 끝에 걸어 두면서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이 그를 추억하게 했다. 영구 결번된 선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구단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팬에게도 큰 자랑이고 추억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두산의 경우 1997년에 박철순이 은퇴할 때도 그의 번호를 영구결번으로 하자는 팬들의 요구가 많았으나 박철순이 팀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어 시기적으로나 모양새로나 좋지 않다고 해서 미뤄왔다. 그후 2002년도 월드컵 등으로 야구 열기가 식을 것을 염려하여 2002년도 두산의 개막 경기 식전행사로 박철순의 영구결번식을 가진 바 있다. 구단이 야구 팬을 경기장에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는 했으나 영구결번식은 그야말로 뜻깊은 행사였다.

그러나 두산은 2004년도 시즌 개막과 함께 박철순의 영구결번 걸개가 걸려있던 자리에 팀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인 "Hustle Doo" 마스코트 걸개를 올렸다. 이를 계기고 박철순의 영구결번 걸개를 은근슬쩍 내려 팬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이 때 구단에서는 "Hustle Doo"의 홍보를 위해 한시적으로 걸어놓는 것이라고 해서 팬들의 반발을 무마시킨 바 있었다. 그런데 올시즌에는 "Hustle Doo" 걸개마저 내려 놓고 자사 광고를 올려 놓으면서 다시 한 번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팬들은 2004 시즌의 약속대로 "Hustle Doo"의 홍보가 충분히 되었으므로 올 시즌에는 박철순의 영구결번 걸개가 걸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너무도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구단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한편 엘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해까지 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던 김용수의 영구 결번 걸개를 올시즌 개막과 함께 내려놓았다. 그리고 구단은 이에 대해 어떤 이유도 팬들에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팬들은 지난 시즌 종료와 함께 구단에서 해임된 김용수 전 코치와 구단과의 어떤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구단이 어떤 해명도 하고 있지 않아 그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영구결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 구단의 역사이며 팬들에게 있어서는 추억이고 자랑거리이다. 이런 것을 구단의 이해 관계 때문에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라면 이는 구단이 팬을 너무나 쉽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양키즈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어느날 갑자기 베이브루스가 건방져 보인다고 생각되어 양키스타디움 외야 펜스에 있는 그의 번호에 녹색 페인트로 칠해 안 보이도록 했다면 양키즈 팬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100년이 넘는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와 우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 짧을 수록 만들어갈 역사는 많은 것이다. 지금은 각 팀에 한두 명 뿐인 영구결번이지만 우리도 100년에 역사를 가지게 되면 메이저리그보다도 더 많은 영구결번 선수가 나올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영구결번을 구단 입맛에 맞게 들었다 놨다 할 것인가. 팬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영구결번이다.구단은 이를 널리 알릴 의무만 있지 이를 숨기거나 감출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석재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