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해리 케인도 자신의 '영혼의 단짝' 손흥민처럼 25년 만에 토트넘 홋스퍼 회장직을 내려놓은 다니엘 레비 전 회장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케인은 레비가 토트넘 회장에서 내려오게 된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어 토트넘과 레비의 결정에 놀랐지만, 자신이 어린 시절 뛰었던 토트넘이 레비 체제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은 확실하다면서 레비가 훌륭한 회장이었다며 레비를 치켜세웠다.
레비 체제에서 토트넘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손흥민과 케인이 레비를 향해 보낸 찬사는 레비 회장이 토트넘이라는 구단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다시 증명한 셈이 됐다.
토트넘은 지난 4일(한국시간) 레비가 회장직에서 사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구단은 "토트넘 홋스퍼는 지난 25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했다. 지난 20시즌 중 18시즌 동안 유럽 대회에 출전해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축구 클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아카데미와 선수,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의 새로운 경기장과 최신식 훈련 시설을 포함해 시설에 꾸준한 투자를 했다"며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 꾸준하게 경쟁력을 발휘하며 최근 유로파리그 우승을 포함해 여러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단은 승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수개월 동안 고위 임원을 여럿 선임했다. 비나이 벤카테샴이 최고경영자(CEO)로, 토마스 프랑크가 남자팀 감독으로, 마틴 호가 여자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는 구단이 스포츠 부문에서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하려는 야망의 일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1년 토트넘의 제11대 회장으로 부임해 25년간 최전방에서 구단 운영을 진두지휘했던 레비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회장직을 맡은 인물로 남게 됐다.
당분간 지난 4월 새롭게 선임한 최고경영자(CEO)인 비나이 벤카테샴이 구단 행정을 지휘할 거로 예상되고 있다. 벤카테샴은 토트넘의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의 CEO로, 아스널을 최근 몇 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팀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레비는 구단을 통해 "토트넘의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과 함께한 업적이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는 이 구단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하는 거대한 규모의 클럽으로 만들었다"며 "더 나아가, 우리는 공동체가 됐다. 나는 릴리화이트 하우스(클럽하우스)와 홋스퍼 웨이(훈련장) 팀부터 모든 선수들과 감독들까지, 수년간 이 스포츠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동업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또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응원해 주신 팬들께 감사하다. 언제나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우리는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며 "앞으로도 이 클럽을 열정적으로 응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비는 20년이 넘도록 토트넘을 경영하며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에 불과했던 구단을 리그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또한 재임 기간 동안 10억 파운드(약 1조 8781억원)을 투입해 프리미어리그 내 최신식 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건설, 2019년 토트넘의 홈구장을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이전시킨 것은 레비가 세운 최고의 업적으로 꼽힌다.
레비는 특히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며 토트넘이 재정적으로 흔들림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많은 팬들은 축구보다 경영에 치중하는 레비의 구단 운영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토트넘은 수년간 선수 매각 외에도 레비가 마련한 다양한 수익 창출 파이프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수익을 벌어들였다.
레비 시절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 정상에 오르는 등 황금기를 보냈기 때문에 당시 영입된 선수들은 지금까지도 토트넘 역사에 남을 만한 영입으로 꼽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레비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는 손흥민과 케인이다.
2015년 여름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손흥민을 영입할 당시 레비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레비는 손흥민에게서 가능성을 봤고, 레비의 선택을 받은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10년 동안 뛰며 팀의 레전드이자 프리미어리그의 레전드로 남았다.
케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스널 유스 출신이었던 케인은 토트넘으로 팀을 옮긴 뒤 '토트넘 맨'으로 성장해 토트넘, 나아가 잉글랜드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끝까지 토트넘에 남았던 손흥민과 달리 우승을 위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케인 역시 토트넘 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선수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때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듀오로 불리며 수많은 골을 합작,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었던 두 선수는 레비가 회장직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에 자신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던 레비를 향해 헌사를 보냈다.
손흥민은 지난 7일 미국과의 9월 A매치 평가전이 끝난 뒤 "레비의 회장직 사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한 자리가 아니"라면서도 "난 10년 동안 토트넘에서 뛰었다. 레비는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또 "레비는 지난 25년 동안 토트넘을 이끌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며 레비가 토트넘에서 남긴 업적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이야기했다.
케인도 말을 보탰다.
케인은 10일 열린 잉글랜드와 세르비아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케인은 레비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솔직히 놀랐다"며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열었다.
케인은 이어 "레비는 훌륭한 회장이었다. 구단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경기장 안팎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의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