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폴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베테랑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국가대표팀 보이콧'을 선언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타인 레반도프스키가 돌연 보이콧을 외친 이유는 현 폴란드 대표팀 사령탑 미하우 프로비에시 감독이 최근 레반도프스키와 상의도 없이 피오트르 지엘린스키에게 대표팀의 주장을 맡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레반도프스키는 8일(한국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프로비에시 감독을 저격하면서 대표팀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나는 폴란드 축구대표팀 감독이 만든 여러 상황들로 인해 신뢰와 자신감이 떨어졌고, 그가 폴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이상 더 이상 폴란드 대표팀에서 뛰기 않기로 결정했다"며 "세계 최고의 팬들을 위해 언젠가 다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레반도프스키가 자신의 SNS로 심경을 전한 뒤 독일 유력지 '빌트'는 레반도프스키가 대표팀 소집 불참 선언을 한 이유가 최근 프로비에시 감독이 말도 없이 대표팀의 주장직을 지엘린스키에게 넘겼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폴란드축구협회는 최근 지엘린스키를 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레반도프스키의 발표에 폴란드 팬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독일의 두 명문 구단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거쳐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활약 중인 세계적인 공격수 레반도프스키는 3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폴란드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통한다. 폴란드 국가대표로만 무려 158경기에 출전해 85골을 터트리며 폴란드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 국가대표팀에서의 레반도프스키는 특별한 존재다. 국제대회에서 오랜 기간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폴란드 대표팀은 2008년부터 국가대표 생활을 한 레반도프스키가 전성기에 접어든 시점부터 궤도에 올랐고, 레반도프스키의 활약에 따라 국제대회 성적이 갈릴 정도로 레반도프스키에게 의존하는 팀이다.
실제 폴란드는 자국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당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나, 레반도프스키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던 2016년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또한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공 월드컵과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본선에 올랐고, 카타르 대회에서는 36년 만에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도 누렸다. 레반도프스키는 카타르 월드컵 이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내년 열리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참가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레반도프스키의 대표팀 보이콧이 폴란드 축구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이유다. 한국 대표팀으로 비유하면 현재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이 갑작스럽게 대표팀 소집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레반도프스키는 6월 A매치 소집 불참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에 따르면 레반도프스키는 이번 A매치 2연전에 불참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내가 이 결정을 내린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 순간에는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폴란드) 선수들이 나 없이도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난 프로비에시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훈련 캠프에 합류하는 게 감독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모든 걸 알지 못한 채 추측하고,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언론을 존중하지만, 내게 신체적인 피로 외에도 정신적인 피로감이 있었다는 걸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앞으로의 시즌과 일정을 위해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레반도프스키는 이번 시즌 공식전 52경기를 소화하며 커리어 통산 단일 시즌 최다 출장 경기 기록을 세웠다.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웬만한 프로 선수들보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것이다. 이는 과부하로 이어졌고, 레반도프스키는 시즌 막바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3주 정도 경기에 빠지기도 했다.
레반도프스키의 헌신은 스페인 라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그리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스페인 슈퍼컵) 우승으로 보답받았지만, 레반도프스키가 느낀 신체적, 심리적 피로감은 그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9일 "폴란드의 최다 득점자인 레반도프스키가 주장직을 잃은 이후 미하우 프로비에시 감독이 감독으로 있는 동안 국가대표로 뛰지 않겠다고 밝혔다. 36세의 스트라이커는 국가대표로 158경기에 출전해 85골을 넣었지만, 이번 A매치 기간 동안 국가대표팀 스쿼드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레반도프스키의 상황을 주목했다.
'BBC'는 "프로비에시 감독은 핀란드와의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질문에 답할 예정이며, 지엘린스키가 함께할 것"이라며 핀란드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프로비에시 감독의 생각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사진=연합뉴스, 레반도프스키 SNS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