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임대 생활을 한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두 측면 공격수가 29일(한국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위치한 타르친스키 아레나에서 열린 첼시(잉글랜드)와 레알 베티스(스페인)의 2024-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결승전에서 만났다.
경기는 베티스의 선제골 이후 첼시가 내리 네 골을 꽂아넣으며 첼시의 4-1 대승으로 끝났다. 베티스는 전반 9분 압두 에잘줄리의 선제 득점으로 기선을 제압했으나, 후반전 들어 연달아 네 골을 실점하면서 무너졌다.
첼시는 미드필더 엔소 페르난데스의 동점골을 시작으로 니콜라 잭슨, 제이든 산초, 그리고 모이세스 카이세도의 연속골을 앞세워 승리를 따내며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챔피언이 됐다.
일반적으로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우승팀은 다음 시즌 UEFA 유로파리그에 출전하지만, 첼시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차지하면서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전망이다.
이날 선발 출전했으나 역전패를 당한 베티스의 임대생 안토니는 팀이 패배한 이후 경기장 위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베티스로 임대된 그는 베티스 이적 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베티스의 공격을 이끌고 있었는데, 정작 시즌 성적을 결정하는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침묵했다.
눈물을 흘리는 안토니를 보고 그에게 다가간 선수가 있었다. 바로 안토니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이자 마찬가지로 첼시에서 임대로 뛰고 있는 산초였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 첼시로 임대를 떠난 산초는 첼시의 주축 선수로 뛰면서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산초는 안토니에게 다가가 안토니를 포옹하면서 그를 위로했다.
두 사람은 같은 듯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산초와 안토니는 모두 전 소속팀에서의 활약 덕에 큰 기대를 받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했지만, 부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사령탑 눈밖에 났다. 산초는 에릭 텐 하흐 감독, 안토니는 후벵 아모림 감독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텐 하흐 감독은 산초의 경기력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는 산초의 부진이 심리적인 문제에 있다고 판단, 자신이 아는 심리 전문가를 산초에게 소개시켜 산초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산초는 끝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항명 논란까지 터지면서 팀 내에서도 신뢰를 잃었다. 입지가 줄어든 선수는 임대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산초가 첼시로 임대 이적한 이후 경기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안토니는 팀 내부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비싼 이적료를 지불하며 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돈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약스에서 안토니를 지도했던 텐 하흐 감독조차 자신의 제자를 포기할 정도였다.
텐 하흐 감독의 후임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은 아모림 감독도 안토니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아모림 감독은 안토니를 윙백으로 배치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지만, 어느 시점 이후로는 안토니를 아예 기용하지 않았다. 출전 시간이 필요했던 안토니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베티스로 임대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최고의 선택이 됐다. 안토니는 베티스가 마치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인 것처럼 날아다녔다. 그는 베티스 이적 후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스페인 라리가 17경기에 출전해 5골 2도움을 기록했고, 유로파 콘퍼런스리그에서도 4골 3도움을 올리면서 베티스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활약이 좋았던 만큼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우승 실패에 대한 아쉬움도 컸을 터다.
두 선수는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돌아가야 한다. 다만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두 사람의 자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최근 아모림 감독과 마찰을 빚은 알레한드로 가르나초가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2선에 한 자리가 나올 수 있겠으나,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두 선수가 아모림 감독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산초는 첼시에서 부활의 희망을 보여줬지만,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실패한 선수라는 낙인이 찍힌 안토니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팀을 떠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영국 일간지 '미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여름 이적시장을 앞두고 안토니를 비롯해 라스무스 회이룬, 가르나초, 마커스 래시퍼드 등 일부 선수들을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재 겪고 있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 스쿼드 중 대부분의 매각에 열려 있는 상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안토니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안토니를 임대로 데려왔던 베티스가 안토니 완전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베티스의 스포츠 디렉터인 마누 파하르도는 지난달 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시도할 것"이라며 안토니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
안토니도 베티스와 동행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는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준결승 2차전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 도중 "이곳에서 뛰어서 매우 행복하다"면서 "나는 베티스에 입단한 이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는 최근에도 "모든 사람들의 사랑 덕분에 베티스는 영원히 내 삶의 일부가 될 것"이라며 "나는 베티스의 모든 팬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행복하면 일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나는 이곳에서 쉽게 잠에 들고, 미소를 지으며 일어난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