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활력을 불어넣어 줄 문화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또 혼자 보러 가기 좋은 공연을 추천합니다. 엑스포츠뉴스의 공연 에필로그를 담은 코너 [엑필로그]를 통해 뮤지컬·연극을 소개, 리뷰하고 배우의 연기를 돌아봅니다 <편집자 주>
"난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 다 내 잘못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가깝고도 먼 사이, 가족이지만 그렇다고 허물없이 친해지기 어려운 사이, 고부 관계가 그렇다. 우리네 부모 세대라면, 혹은 현재 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터다.
25년간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켰던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면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연극 ‘분홍립스틱’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분홍립스틱'은 깐깐하고 고집 센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 아래서 시집살이를 겪는 며느리 간 갈등과 화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한 관계를 되짚는 작품이다.
며느리 지영(이태란 분)에게 살림살이를 두고 잔소리를 하던 시어머니 해옥(박정수)은 갑자기 치매 증상을 보이고 일상의 큰 변화를 마주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밥순이 취급을 받는 지영은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며 한탄한다.
지영의 아들 민우(정대성)는 미국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 친구(한솔)만 사귄 채 한국에 돌아와 지영을 실망하게 한다. 남편 현욱(정찬)과 시누이 태리도 지영을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믿었던 민우까지 자신을 배신하고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치매를 계기로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가족의 모습이 관전포인트다.
치매에 걸린 해옥은 며느리의 입장보다 자기 고집대로만 나아갔던 행동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지영에게 진정한 사과를 건넨다.
사실 해옥에게도 그 시대의 엄마들이 그랬듯 나름의 고난과 시련이 있었다. 아내에게 줄 생일 선물로 분홍립스틱을 준비한 남편이 사고로 허망하게 떠났고 해옥은 그 이후로 화장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여자로서의 삶도 포기한 채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았다.
극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그저 세대 차이 때문에, 또 각자의 처지가 달라 오해가 생겨 갈등이 쌓였던 것 뿐이다.
고부 갈등과 치매는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감의 힘은 크다.
중년, 노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 공연이다. 실제로 객석에 중년 관객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같은 한국적 가족 문화를 담은 드라마가 세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았듯 ‘분홍립스틱’ 역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넘어 가족 구성원의 화해, 성장을 다뤄 젊은 세대에게도 울림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가 극의 주축을 이룬다. 정혜선, 박정수, 송선미, 이태란, 정찬, 공정환, 김수연, 임성언 등 드라마, 영화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 중이다.
박정수는 베테랑 배우답게 가족을 위해 강하고 센 엄마로 살아온 해옥을 이질감 없이 연기한다. 21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태란은 괴팍한 시어머니를 비롯해 남편 현욱, 아들 민우 때문에 속 썩는 지영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통의 남편들을 대변하는 지영의 남편 현욱을 맡은 정찬, 여동생으로 엄마와 함께 사는 철부지 돌싱 태리 역의 임성언 역시 실감나는 연기로 극을 채운다.
사진= 분홍립스틱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