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1.24 18:31 / 기사수정 2011.01.24 18:45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남자배구에서 유일하게 아마추어 초청팀으로 참가중인 '상무신협'에게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을까.
물론 있었다. '백구의 대제전'이라 불렸던 1990년대 실업배구대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무의 전성시대를 확인할 수 있다.
프로화가 진행되기 전 당시 배구판도는 한양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을 포함한 대학부와 고려증권(해체), 현대자동차서비스(現 현대캐피탈), 한국전력(現 KEPCO45), 상무, 럭키금성(現 LIG 손해보험), 대한항공 등 실업팀이 백중세를 이루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종화, 노진수, 이상렬, 장윤창, 정의탁, 임도헌 등 실업과 대학배구의 에이스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겨울 배구 열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이 가운데 상무 배구단은 1992년 대통령배 배구선수권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팬들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군 복무로 인하여 많은 스타가 한번쯤 거쳐 가는 상무지만, 1992년 당시 전력은 상무 배구단 역사상 최강이었다. 노진수(45)를 필두로 신영철, 이재필, 오욱환, 김동천 등 파워와 정교함을 두루 갖춘 이들이 대거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최강이라 여겨졌던 현대자동차서비스와 고려증권에 단 1경기도 빼놓지 않고 승리, 그 해 대통령배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상무는 하종화, 마낙길, 이성희, 임도헌 등이 입대하며 '또 다른 스타군단'의 탄생을 알리기도 했지만, 1992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팀 중심에 있던 선수는 다름 아닌 노진수였다.
이 당시 지도력을 인정받은 노진수는 LG화재(현 LIG 손해보험)지휘봉을 잡으며 2002년 슈퍼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중국 북경시 성인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이후 대구여자고등학교 배구부 감독을 맡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렇듯 노진수는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성공한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는 뉴질랜드 이민 이후 '노진수 꿈나무 배구 교실'을 열었다는 후문이다.
[사진=노진수 전 감독의 지도를 받는 뉴질랜드 교민들과 지역 주민들 (C) 뉴질랜드 교민 홈페이지 '넷질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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