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토트넘 홋스퍼가 영입 우선순위에 올려뒀던 크리스털 팰리스의 에이스 에베레치 에제 영입에 실패한 분위기다.
하룻밤 만에 형세가 바뀌었다. 당초 에제는 토트넘과 단독 협상 중이었으나, 토트넘이 에제의 이적료로 팰리스와 줄다기를 하는 사이 에제 영입전에 갑작스럽게 뛰어든 아스널이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자 선수의 마음이 아스널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협상의 귀재로 불리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인 협상 방식으로 타 구단들의 비판을 사고 있는 토트넘의 수장 다니엘 레비 회장이 이적료를 아끼기 위해 간을 보다가 결국 주요 타깃을 놓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의 대체자로 지목됐던 에제를 타 구단, 그것도 토트넘과 가장 치열한 라이벌리를 자랑하는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에 빼앗겼다는 점에 크게 분노하는 중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 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 영국 유력지 '텔레그래프' 등 복수의 공신력 높은 현지 언론들은 21일(한국시간) 아스널이 토트넘의 타깃이었던 에제의 하이재킹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아스널은 주득점원인 독일 국가대표 공격수 카이 하베르츠가 무릎 부상을 당해 당분간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게 유력해지자 급하게 에제 영입 경쟁에 참전했다. 아스널은 팰리스가 에제의 이적료로 내건 6750만 파운드(약 1270억원)를 지불하기로 했고, 토트넘과 단독 협상을 벌이고 있었던 에제 측과 팰리스는 곧장 아스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스널이 하베르츠의 부상을 확인한 뒤 에제 영입 작업에 착수, 에제 측과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에제가 아스널행에 대한 마음을 굳힌 배경으로는 그가 아스널 유스 출신이라는 점이 꼽힌다. 1998년생 에제는 지난 2006년 8세의 나이로 아스널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해 5년 동안 아스널에서 축구를 배우다 2011년 풀럼 유스팀으로 떠났고, 이후 레딩과 밀월을 거쳐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또한 에제는 어린 시절부터 아스널을 응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수를 매각하기로 이미 결정했고, 책정한 이적료만 받으면 되는 팰리스로서는 토트넘과의 계약서에 아직 도장을 찍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이적료를 지불하겠다고 나선 아스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토트넘이 화끈하게 에제의 이적료를 냈다면 달랐겠지만, 팰리스와 토트넘의 협상은 단독 협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토트넘은 에제 영입에 실패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BBC'는 "토트넘으로서는 에제가 아스널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크나큰 타격"이라면서 "새로운 감독인 토마스 프랑크는 제임스 매디슨이 부상을 팀을 떠난 뒤 에제를 주요 타깃으로 삼았고, 구단도 에제 영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며 토트넘 내부에서는 에제를 영입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BBC'는 그러나 "토트넘 내부 관계자들은 이제 에제를 영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면서 "에제는 어린 시절부터 아스널을 응원했고, 13세까지 아스널 유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만큼 아스널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나선 순간 그의 행선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현재로서는 에제 영입을 포기한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에제 영입 실패로 인해 토트넘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토트넘은 팰리스 입단 후 줄곧 팰리스의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한 에제를 영입해 이번 여름 토트넘을 떠나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의 로스앤젤레스 FC(LAFC)로 이적한 손흥민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제임스 매디슨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앞서 모하메드 쿠두스가 토트넘에 합류하기는 했으나, 에제가 골게터는 물론 플레이 메이커로도 기용됐던 손흥민처럼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 작업을 이끌고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에제야말로 손흥민의 진정한 대체자로 여겨졌다. 에제 영입 실패의 충격이 큰 이유다.
'디 애슬레틱'은 토트넘이 에제와의 협상을 먼저 시작하고도 선수를 놓친 것이 토트넘의 현재 위상을 증명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토트넘이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권을 갖고 있음에도 선수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는 토트넘이라는 구단이 선수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 애슬레틱'은 "토트넘은 이적시장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얻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며 "모건 깁스-화이트 영입 실패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북런던 라이벌 아스널이 크리스털 팰리스의 에베레치 에제를 막판에 빼앗은 것은 훨씬 더 용납하기 힘들 일로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만약 토트넘이 이적료를 조금 더 과감하게 제시했다면 팰리스가 에제를 일찍 떠나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스널은 하베르츠의 부상 이후 올여름 초반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에제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방향을 틀었다. 반면 토트넘은 제임스 매디슨이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서두르지 않았고, 결국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자원 두 명을 영입하지 못하고 이적시장을 실패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디 애슬레틱'은 그러면서 "에제와 깁스-화이트 영입에 모두 실패한 것은 분명히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하게 두 명의 선수를 놓친 것을 넘었다"며 "이 모든 상황은 토트넘이 빌바오에서 역사적인 우승을 거둔 이후에도 제대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파브리치오 로마노 SNS / 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