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5-12-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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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은 "故이순재, 촬영장서 7시간 기다려도 편의 요구 안해…진짜 어른" [전문]

기사입력 2025.11.26 08:54 / 기사수정 2025.11.26 08:54

이순재가 세상을 떠났다
이순재가 세상을 떠났다


(엑스포츠뉴스 명희숙 기자) 배우 이세은이 고(故) 이순재를 향한 깊은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이세은은 25일 자신의 계정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올리며 평생 스승이었던 이순재에 대한 애틋한 회상과 존경을 담아냈다.

그는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건 TV 속 ‘대발이 아버지’였다. 내가 꼬마 때에도 선생님은 국민 아버지셨다”고 회상하며,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강의실에서 마주했던 이순재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세은은 “선생님은 ‘돈 때문에 강의하는 것 아니다’ 하셨었다. 그럼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저 사명과 책임감으로, 우리를 정말 사랑해 주셔서 함께해 주셨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학교의 2기 입학생이었다.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가며 생활하던 시절, 교수님은 그 어설픔을 보고도 늘 격려해 주시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셨다”며 그 시절을 함께했던 추억을 남겼다.

강의실 밖에서도 이순재는 ‘자상한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전했다. 그는 “어디서나 절 보면 ‘쟤가 내 제자’라고 자랑하셨다. 공연을 하면 무대 뒤로 오셔서 ‘대사가 너무 빠르다’, ‘나른다’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또한 이세은은 이순재의 성품과 철저한 프로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선생님은 어떤 개인적 요구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연장자이자 누구보다 편의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다 같이 고생하는데 나 하나 이롭자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5시간, 7시간도 묵묵히 기다리셨다”고 전했다.

그는 고인의 열정과 성실함을 “어떤 젊은이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라 표현하며, “선생님은 늘 진짜 어른이셨다. 겸손하라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배우가 되라고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특히 이순재가 지난해 대상 수상 당시 남긴 소감에 대해 “선생님의 어떤 예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며 눈물로 글을 이어갔다.

이세은은 “오늘 하루 종일 울었다.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이 계속 떠오른다”며, 이순재가 강의 중 해주었던 ‘라이브 드라마’ 시절의 재치 있는 일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어 “나는 선생님을 영원히 그때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너무나 슬퍼서 마지막을 예감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전한 그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따뜻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이세은은 “우리 교수님, 아버지 같은 분. 천국에서도 부지런하시고 성실하실 그분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수많은 제자와 후배·동료들의 추모가 가족분들께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고 이순재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 20분,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이하 이세은 글 전문.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건 tv 속 대발이 아버지 였다 .
내가 꼬마 때에도 선생님은 국민 아버지 셨다 .
대학 1힉년 선생님을 강의실에서 처음 뵈었던 기억이 난다 .
선생님은 돈 때문에 강의 하는 것 아니다 , 하셨었다 . 그럼 무엇 때문이었을까 ?
그저 사명과 책임감으로 , 우리들을 사랑해 주셔서 , 정말 사랑해 주셔서 그렇게 함께 해주셨다 .

우리는 학교의 2기 입학생 이었다 . 바로 위에 단 1기수 밖에 없었다 . 그래서 정말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가며 학교 생활을 했다 .
학교 축제때도 생각해 보면 열정만 가득하고 어설펐다 .
하지만 교수님은 그 어설픔을 보고도 늘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주셨다 .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똘똘 뭉쳐 하나씩 만들어 가던 그 시기에 늘 교수님도 함께 계셨다 .

학교 밖에서 우연히 뵌 교수님은 자상한 아버지 이자 할아버지 그 자체이셨다 . 언제 어디에서 나를 보셔도 ,
시상식 배우 석에 앉아 계시고 내가 사회를 볼 때에도 나에게 손짓하시며 주변 분들께 쟤가 내 제자라고 . ”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 공연을 할땐 무대 뒤로 오셔서 대사가 빠르다 . 천천히 해라 . 나른다 . 대사 너무 날리지 말라고 .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

놀라웠던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초대 받으신 결혼식 , 행사 , 당신의 스케줄은 빠짐 없이 참석 하셨다 . 어떻게 여기 까지 오셨지 ? 싶을 정도였다 . 그때도 선생님은 이미 할아버지 이셨다 . 선생님의 열정과 체력은 자기 관리와 주변을 생각하시는 따뜻한 마음은 어떤 젊은이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

그 뿐 만이 아니다 . 촬영장에서 선생님은 어떠한 개인적인 요구도 일절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유명하셨다 . 사극이나 시대극을 찍으면 주요 인물만 50여명에 이른다 . 배우들은 12시간씩 대기 하기도 일쑤다 . 주연 배우들은 스케줄에 쫓겨 불가피하게 일정 조정을 부탁하기도 한다 . 하지만 선생님이 계신 곳은 예외다 . 선생님은 어떤 편의도 요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가장 연장자 이셔도 , 가장 체력적으로 모든 면에서 충분히 배려를 요구하실수 있음에도 하지 않으셨고 먼저 제안해도 마다 하셨다 . 다 고생하는데 나 하나 이롭자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 촬영 순서대로 5시간이고 7시간이고 기다리셨다 .때문에 선생님이 계신 곳은 대부분 그 어느 누구도 개인 편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

선생님은 늘 진짜 어른 이셨다. 우리가 바른 생활 습관으로 자기관리를 잘 하는 배우가 되라고 가르쳐 주셨다 . 겸손하라 하셨다. 항상 몸소 보여주셨다 .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하듯이 ,열마디 말보다 모범을 보여주시던 아버지시고 참 어른 이셨다 .

선생님께서 작년에 대상을 수상 하셨을 때 ,비로소 대상을 수상 하심에 첫번째로 놀랐다 . 선생님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 더욱더 이 세상에 맞닿을 듯 더욱 겸손해지신 모습을 보며 마냥 박수치며 기뻐할 수가 없었다 . 선생님이 하신 어떤 예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아니 ,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

대학교수와 제자도 어린 아이와 유치원 선생님 처럼 라포 형성이 되는구나 느끼는 오늘이다 . 아침부터 엉엉 울고 , 허무하고 글을 쓰며 또 운다 .

다시 선생님과 처음 뵌 날을 떠올려 본다 .
선생님은 강의실에서 검은색 정장을 잘 차려 입으시고는 젊은 날을 떠올리며 말씀 하셨다 .
“동양방송에서 근무할 때야 . 그때는 드라마가 전부 라이브 였거든 . 생방송 이라고 드라마가 . 그래서 ng 한번 나면 전국에 생중계라고 . 큰일 나는 거였어 . 하루는 내가 전화 받는 연기를 해야 되는데 , 전화가 울리는데 테이블에 전화기가 없는거야 . 그래서 어떻게 해 . 그냥 손가락으로 전화를 받았지 뭐 . 이러고 연기를 했대도 . ”

선생님의 그 익살스러운 웃음이 떠오른다 .
나는 선생님을 영원히 그때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
너무나 슬퍼서 마지막을 예감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지가 않다 .

그깟 돈 때문이 아니라 , 패기 넘치고 열정 넘치는 마음으로
신생 학과에 신입생을 가르치러 오셨던
우리 교수님 , 아버지와 같은 분 ,

천국에 가심이 분명하신 우리 교수님 ,
그곳에서도 늘 그렇게 부지런하시고 성실하실 우리 교수님 ,
내내 평안하시기만 기원 합니다 .

수많은 제자와 후배 동료들의 추모가 가족분들께도
부디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
감히 나 따위는 닿지도 못할
선생님의 이 위대한 발자취를 기리며 

사진 = 이세은

명희숙 기자 aud666@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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