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베트남이 '우승 후보' 일본과 난타전을 벌인 끝에 패배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베트남은 실리 축구를 앞세워 53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멀티 득점에 성공하며 값진 기록을 세웠다.
베트남은 14일 오후 8시 30분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2-4로 패배했다.
두 팀의 선수단만 두고 보면 베트남의 전력은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베트남은 16강 진출조차 어려운 팀으로 분류된 반면 일본은 한국과 함께 유력 우승 후보로 꼽혔다. 베트남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사전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트루시에 감독의 발언은 많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
최근 베트남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박항서 전 감독이 사령탑을 떠난 뒤 필립 트루시에 감독 체제로 돌입한 베트남은 트루시에 감독 부임 이후 치른 5경기에서 1승 4패를 거뒀다. 지난 10월 두 차례의 친선경기에서 중국과 한국에 각각 0-2, 0-6 패배를 당했다. 이후 필리핀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2차예선에서 승리했지만, 이어진 이라크전에서는 패배했다. 대회가 열리기 전 계획한 키르기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도 패배하며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 아시안컵 일정을 시작했다.
또한 베트남과 일본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부터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순위인 17위, 베트남은 94위. 또한 선발 명단을 비롯해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일본 선수들의 이름값, 그리고 최근 일본의 A매치 성적이 상당히 좋았던 반면 베트남은 선수들의 실력이나 최근 성적이 나빴다.
일본은 아시안컵이 열리기 직전까지 A매치 10연승을 달리는 중이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 차례 격파했던 독일을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고, 튀르키예나 튀니지 등 쉽지 않은 팀들을 상대로도 승리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베트남은 공이 둥글다는 말을 되새기며 경기에 임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 속에서 최선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부이 호앙 비엣 아잉, 보 민 쫑, 응우옌 탄 빈이 수비라인에 섰다. 판 뚜언 타이, 응우옌 타이 손, 웅우옌 뚜언 아잉, 팜 쑤언 마잉이 미드필드에 포진했다. 스리톱은 응우옌 딘 박, 도 흥 중, 팜 뚜언 하이로 낙점됐다. 골문은 필립 응우옌이 지켰다.
베트남과 달리 일본은 약간의 로테이션을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11명 중 무려 9명이 유럽파로 구성됐다. 아시안컵 유력 우승 후보로 꼽히는 국가다운 전력이었다.
일본의 최전방에는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의 공격수 호소야 마오가 섰다. 미드필드는 모두 유럽파가 채웠다. 나카무라 케이토(랭스), 미나미노 타쿠미(AS 모나코), 이토 준야(랭스), 모리타 히데사마(스포르팅 CP), 엔도 와타루(리버풀)이 측면과 중원을 책임졌다. 수비진은 이토 히로키(슈투트가르트), 타니구치 쇼고(알 라이얀), 이타쿠라 코(묀헨글라드바흐), 유키나리 스가와라(알크마르)가 구성했다. 골키퍼 장갑은 스즈키 자이온(신트라위던)이 착용했다.
예상과 다르게 경기는 전반전부터 치열했다. 일본의 핵심 공격수 미나미노가 전반 11분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베트남은 5분 뒤 응우옌 딘 박의 동점골로 응수했다. 이어 전반 33분에는 팜 투안 하이가 역전골을 기록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하지만 일본은 쉽게 물러서는 팀이 아니었다. 선제골의 주인공 미나미노의 발끝이 다시 한번 빛났다. 전반 45분 미나미노가 가벼운 마무리로 경기 균형을 맞췄다. 이어 전반 추가시간 5분 박스 왼편에서 나카무라가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을 베트남 골문 구석에 꽂아 넣으며 다시 리드를 가져왔다. 역전까지 했었던 베트남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가득한 하프타임이었다.
베트남은 후반전에도 동점골을 터트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교체카드를 통한 승부수도 통하지 않았다. 후반 막바지에는 상대 슈팅이 수비에 맞고 굴절되어 들어가는 불운도 있었다. 일본을 상대로 돌풍을 기대했던 베트남은 결국 일본에 패배하며 1패와 함께 대회를 시작했다.
그래도 베트남은 이번 경기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세웠다. 베트남이 일본을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린 건 1971년 남베트남 시절 이후 53년 만이다. 일본의 지난 A매치 11경기 동안 일본을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린 건 튀르키예 외에 베트남이 유일하다.
베트남은 실리 축구를 바탕으로 일본을 괴롭혔다. 세 명의 센터백을 후방에 배치하고 측면 윙백들의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시켰다. 공을 빼앗으면 그 위치를 기점으로 측면을 활용한 역습을 펼쳤다. 라인을 높게 올린 채 베트남 진영에서 공격을 시도했던 일본 선수들이 수비로 복귀하기 전까지 빠른 속도로 공격을 전개해 일본에 유효타를 입히겠다는 계획이었다.
베트남의 이런 방식은 주효했다. 동점골로 연결된 코너킥과 역전골이 터진 프리킥 모두 역습 과정에서 나왔다. 2004년생 19세 유망주 응우옌 딘 박이 수비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과감한 드리블을 시도해 얻어낸 세트피스 기회였다. 비록 패배하기는 했으나 베트남은 일본전을 대비해 준비한 실리적인 전술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연합뉴스, VFF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