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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놈!놈!놈!-17] 꾸준함으로 데포르티보를 재건한 세르히오

기사입력 2009.04.13 00:32 / 기사수정 2009.04.13 00:32

유형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유형섭기자]
 축구선수에게 있어 꾸준함이란 단어는 엄청난 노력을 의미한다.  매 시즌 선수가 바뀌고 감독이 바뀌는 등 잦은 환경적 변화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고 구단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게 해주는 것은 축구선수의 의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세르히오 곤살레스는 꾸준함이라 단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앙 미드필더로, 푸욜, 라울과같이 수많은 타이틀을 얻진 못했지만, 소속팀 데포르티보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에스파뇰에서의 성공

1976년 11월 10일 카탈루냐지방의 오스피탈레트 데 요브레가트에서 태어난 세르히오 곤살레스 소리아노는 세군다B리가 소속인 지역팀 CE 로스피탈레트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그는 18세가 되어서야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는 95/96시즌 에스파뇰로의 이적이다. 

그는 에스파뇰에서도 성인팀이 아닌 유스팀이라 할 수 있는 에스파뇰B팀에서 뛰게 되는데, 97/98시즌부터는 성인팀과 B팀을 오가며 얇은 선수층에 몇몇 선수에게 의존하고 있던 에스파뇰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이반 엘게라, 주앙 카프데빌라등 미래의 스페인 축구를 주무르게 될 선수들과 함께 뛰었던 세르히오.  98/99시즌부턴 등번호 6번으로 에스파뇰 1군의 정식멤버로 등록, 34경기에 출장하며 성공적인 프리메라리가 정식 첫 시즌을 마친다. 

특히 99/00시즌엔 코파 델 레이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하는데 공헌하며 세르히오 자신의 첫 트로피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에스파뇰에서 6시즌 동안 세르히오는 수많은 스페인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에겐 자신의 모습을 스페인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 보이고 싶었고, 커리어적인 성공 역시 거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00/01시즌 종료 후 그는 당시 ‘라리가 빅4’ 중 한팀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을 하게 된다.  후에 이 이적은 세르히오 자신의 마지막 이적이 된다.

수페르 데포르의 한 축으로

'수페르 데포르' 시대를 지속하려 했었던 데포르티보.  데포르티보는 프리킥, 코너킥 상황에서 위력적인 크로스를 올려줄 선수가 필요했고 세르히오가 그 주인공이었다.  세르히오가 처음으로 리아소르의 잔디를 밟았을 때, 데포르티보의 서포터들은 그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카탈루냐 지방의 사람이었고, 데포르티보는 갈리시아 지방의 라 코루냐지방팀이었기 때문이다.  세르히오는 팬들의 반응이 억울했지만, 머지않아 실력으로서 증명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데포르티보는 라리가 최고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세르히오는 자연스레 녹아들어 갔다.  프란, 자우밍야, 발레론, 마카이, 트리스탄, 로메로등과 함께 뛰게 된 세르히오는 난생처음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게 되고, 아쉽지만 준우승 트로피도 들어보게 되며, 스페인 국가대표에도 소집되어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한일월드컵에도 출전한다.  어느새 세르히오는 데포르티보의 핵심선수가 되었고 서포터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야말로 세르히오의 전성기였다.  특히, 03/04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데포르티보가 AC 밀란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 남을 명경기중 하나로 남게 된다.

데포르티보의 흥망, 그리고 세르히오

상승이 있으면 추락이 있는 법.  데포르티보 역시 세상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존 선수들의 은퇴,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거대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함에 따라 중소구단이 겪을 수밖에 없던 선수들의 방출은 데포르티보에 악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데포르티보는 어느새 강등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팀이 되었다. 

라 리가 빅4의 칭호 따윈 이미 뺏긴 지 오래다.  하지만, 세르히오는 군말 없이 축구인생의 절정기를 달려야 할 20대 후반을 데포르티보를 살리는데에 소진한다.  자신에게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무대라는, 달리 말해 축구선수로서 모두가 꿈꾸는 최고의 무대를 자신에게 선사해준 데포르티보가 자신이 마지막까지 뛰어야 할 곳이라고 세르히오는 생각했던 것이다. 

세르히오는 꿋꿋하게 데포르티보의 중앙을 지키기 시작한다.  선수들 간의 불화도 감독의 교체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순 없었다.  데포르티보의 서포터들은, 동료는, 구단은 세르히오로 대동단결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팀 동료인 무누아와 아우아테의 주먹다짐, 전반기를 최하위로 마감하느등 다사다난했던 데포르티보의 07/08시즌의 최종 성적은 9위였다.

세상은 재밌게도 추락이 있다면 비상이 있는 법이다.  데포르티보는 다시 비상하려 하고 있다.  데포르티보는 큰돈을 쓸 순 없지만 필리페, 과르다도, 라피타등의 영입이 짭짤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베테랑인 마누 파블로와 발레론도 복귀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누 파블로에 이어 부주장인 세르히오는 어김없이 팀의 중추로서 활약하고 있으며, 데포르티보는 8위로 웨파컵 진출을 노리고 있다.

세르히오는 현재 32세이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데포르티보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세르히오의 아버지이자 에이전트인 아벨리노 곤살레스는 아들이 연봉 삭감에 큰 이견을 달고 있지 않기에 곧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 밝혔다.

데포르티보의 전성기와 암흑기, 그리고 다시 부활의 시기를 모두 겪은, 달리 말해 지금까지 방출당하지 않고 남은 선수는 발레론과 세르히오뿐이다.  이 두 선수는 '데포르티보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부상으로 인해 한 시즌 넘도록 뛰지 못한 발레론에비해 세르히오는 8시즌 동안 큰 부상하나 없이 꾸준한 활약을 보이는 부동의 주전이다.

비록 스페인 국가대표에선 바라하, 사비등 쟁쟁한 미드필더에 밀려 많은 기회를 부여받은 적은 없지만 데포르티보에선 언제나 핵심적인 미드필더였고, 언제나 그 부여받은 사명을 완벽히 완수해내었다. 

몇 시즌 뒤 데포르티보가 다시 '수페르 데포르'의 명성을 되찾는다면, 한번 무너졌었던 데포르티보를 다시 재건하는데 큰 도움을 준 세르히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진=세르히오(C)데포르티보 공식 홈페이지 캡쳐]



유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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