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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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놈!놈!놈!] 라리가에서 만개한, 프레데릭 카누테

기사입력 2008.12.15 10:01 / 기사수정 2008.12.15 10:01

유형섭 기자

[유럽축구 놈놈놈] 11회 - 프리미어리그에서 온 선수 (프리메라리가)

프리메라리가에서 만개한 재능, 프레데릭 카누테



[엑스포츠뉴스=유형섭 기자] 많은 축구 선수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곳을 프리미어리그로 뽑는 가운데, 프리미어리그를 떠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자신의 진정한 능력에 눈뜨고 꿈을 이루는 선수도 있다.

말리의 국가대표 공격수 프레데릭 카누테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만개하지 못했던 그의 능력을 스페인 세비야에서 만개시키며 성공한 케이스로, 큰 키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드리블능력과 골을 노리는 축구선수로서의 측면뿐만 아니라 모국인 말리에 자선사업을 하는등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아 모든 아프리카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다.
 
말리의 별, 프랑스에서 태어나다

1977년 9월 2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난 카누테는 지역 연고팀인 리옹에서 축구인생을 시작하였다. 카누테는 192센티미터라는 키에서 나오는 세밀한 발재간이 장기로 골결정력이 좋은 공격수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카누테는 97/98시즌 18경기에 출장하며 6골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변혁을 준비하는 리옹에서 그의 입지는 서서히 줄어들어 갔고, 그는 결국 99/00시즌 웨스트 햄으로 임대 이적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의 테크니션 포워드

레드납감독의 지휘 아래 웨스트햄에서 뛰던 그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비슷한 파올로 디 카니오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축구선수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3시즌 반 동안 총 84경기 출장 29골을 기록한 카누테의 능력에 토트넘은 매력을 느꼈고, 웨스트 햄의 강등과 함께 03/04시즌, 그는 같은 런던지역의 팀인 토트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언제나 빅4에 밀려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토트넘에게 카누테는 그들의 희망을 이루어줄 존재로 평가받았다.

카누테는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듯이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멋진 활약을 보여줬으나 토트넘을 챔피언스리그로 이끌기엔 부족했고, 로비 킨과 저메인 데포에게 점점 주전 공격수 자리를 위협당했다. 결국, 그는 피스컵에서의 빛바랜 활약을 마지막으로 토트넘을 떠나게 된다.

토트넘에서의 생활은 그의 마지막 프리미어리거로서의 생활이었다.
 


라리가 최고의 푼타

05/06시즌 그의 새로운 자리는 잉글랜드가 아닌 스페인이었다.

650만유로에 세비야로 이적한 카누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었다. 라모스 감독은 카누테를 더 이상 피지컬이 좋은 테크니션 포워드에 그치지 않고 카누테 자체에 전술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라모스 감독의 4-4-2 전술에서 프레데릭 카누테는 상대의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측면선수들에게, 파트너인 루이스 파비아누에게 찬스를 제공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후안데 라모스의 세비야는 토트넘이 이루지 못했던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구단이었다. 다니 아우베스, 아드리아누등의 활약과함께 세비야는 UEFA컵 2연패 달성과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되고, 카누테의 파트너인 루이스 파비아누는 브라질 국가대표 주전공격수로 발탁될 만큼 최고의 활약을 보인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떠난 이후 루이스 히메네즈 감독이 부임했을 때도 카누테의 비중은 여전했다. 카누테의 유무에 따라 세비야의 그날 경기력이 좌우될 정도였다. 최근에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봐도 카누테가 얼마나 위력적인 공격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리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다

카누테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를 경기를 뛴 적이 있으나 앙리, 트레제게가 버티는 프랑스 국가대표에선 자신의 자리가 없고, 부모의 나라를 따르기로 결정하여 2004년, 말리 국적을 선택,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여하면서 말리국가대표로서의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마하마두 디아라, 세이두 케이타와 함께 말리를 대표하는,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 중이다. 또한, 그는 무슬림인 그는 거르지 않고 라마단을 세며 이슬람교에서 금기인 도박을 멀리기하기에 도박업체가 스폰서인 세비야의 유니폼을 거부했던 적도 있다.(그 업체가 이슬람재단에 기부를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스페인에는 그가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산 이슬람 사원이 있다.

2006년에는 말리에 자선재단을 설립했으며, 축구 내외적인 활약을 인정받아 2007년에는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받았다.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엔이 받았던 이 상에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은 선수가 선정된 건 처음이었다.
 
구드욘센, 우드게이트, 오웬, 앙리 대부분의 프리미어리그 출신 선수들은 부상이나 부진 등 성공적이지 못한 프리메라리가 생활을 보낸 후 결국 팀에서 이적하거나 팀의 주전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카누테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펼치지 못했던 그의 진정한 능력을 프리메라리가에서 만개시키며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공격수이자 아프리카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축구선수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공한 카누테,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프레데릭 카누테 ⓒ세비야 FC 구단 홈페이지, 그림=ⓒ킹코스타]



유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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