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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프리즘] 32. 보스턴 셀틱스(下)

기사입력 2007.12.22 00:18 / 기사수정 2007.12.22 00:18

편집부 기자

'THE LEGEND' 버드의 셀틱스

엇비슷한 전력의 강호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었던 1970년대에도 셀틱스의 강세는 이어졌다. 1950~60년대만큼의 강력함은 아니었지만, 60년대 최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노장 하블리첵에 센터 데이브 코웬스, 조 조 화이트, 폴 사일러스, 돈 넬슨 등을 주축으로 1973/74, 1975/76시즌 우승과 5년 연속 디비전 우승(1971~76)을 일궈내며 그들의 명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1979/80시즌. 래리 버드가 등장한다.
 
1970년대 NBA는 위기를 맞는다. 바로 흥행력 부족. 많은 스타와 실력 있는 좋은 팀들이 있었지만, 당시 NBA는 일반인들을 관중석과 TV로 끌어들일 카드가 부족했다. 특히, 미국내 중산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인들에게 NBA는 어필하기가 어려웠다. 리그에 흑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이후, 백인 농구스타는 점점 드물어졌고 농구는 '흑인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더 강해져 갔다. 그러던 중 등장한 것이 바로 래리 버드.

버드에게는 특출난 것이 없어 보였다. 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한 그는 키에 비해 심하게 작은 윙스팬(양팔을 벌려 양끝을 잰 길이. 길수록 농구에 유리하다)을 지녔으며 줄리어스 어빙과 같은 체공능력도 없었고  '대학 시절부터의 평생 라이벌' 매직 존슨과 같은 사람들의 눈을 매혹할만한 현란한 개인기를 가진 선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버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끈기와 근성, 그리고 감각'이 바로 '더 레전드'를 만들어냈다. 셀틱스의 경기에서 코트에 공이 흐르면 제일 먼저 바닥에 몸을 던지는 사람은 슈퍼스타 버드였다. 부족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었지만 수비에선 온몸을 바쳐 상대를 막았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코트를 누볐다.

그리고 말로는 설명이 불가한 스파이더맨과 같은 농구 감각은 그와 그의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의 농구 감각은 도무지 훈련이나 연습 등으로는 도저히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1986/87시즌 디트로이트와의 동부파이널에서 종료직전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인터셉트 'The steal'로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은 NBA역사상 최고의 스틸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대 셀틱스는 1984,85,86년 3연속 MVP 수상에 빛나는 버드를 중심으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쉬의 'NBA 역대 최강의 프런트 라인'을 구축해냈다. 대니 에인지, 데니스 존스, 빌 월튼 등이 활약했던 80년대 셀틱스는 3번의 NBA우승과 5번의 컨퍼런스 우승, 8번의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당시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와의 라이벌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멋진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다.* 이 당시 존슨과 버드의 대결은 온 미국인들을 TV로 끌어들였으며 백인과 흑인들은 저마다 우상을 열심히 응원했고, 80년대 보스턴 지역에는 래리 버드의 셀틱스 33번 저지가 붐이 일어났다.

 * 주 5. 매직 존슨의 일화.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나눠주는 스케줄표를 받으면, 존슨은 스케줄표에 셀틱스와의 경기 2경기를 빨간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왜 그렇게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에게는 모든 게임중 셀틱스와의 경기 2경기와 나머지 80경기로 나누어진다."라고 대답.

우린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죠'

그러나 1992년 버드가 고질적인 등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선언한 뒤 명문 셀틱스의 이름은  끝없이 추락했다. 1992/93시즌을 뒤로 1994/95시즌 플레이오프에 간신히 진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위권을 면치 못했고, 과거의 명성은 어디로 간 채 리그의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버드의 후계자'로 불리던 레지 루이스라는 장래가 촉망되던 유망주가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이 컸다. 그는 버드 은퇴 이후에 팀의 출장시간과 득점을 리딩했으나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눈을 감고 말았다. 게다가 루이스가 사망한 이후 팀을 이끌던 유럽산 용병 디노 라자가 일직 무릎부상을 당해 귀국해버렸다고, 랜디 바이어스라는 유망주를 드래프트 전체 2번픽으로 뽑지만 다음날 바로 약물중독으로 인하여 사망해버리는 불운의 연속.

2000년대 초반 셀틱스는 폴 피어스와 앤투완 워커 '다이나믹 듀오'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다시 부활을 하는 듯했다. 이 당시 앤투완 워커는 리그의 많은 이가 인정한 버드의 뒤를 이을 만한 다재다능한 포워드였고, 폴 피어스는 무지막지한 돌파와 4쿼터의 폭발로 팀의 득점을 이끌었다. 피어스와 워커가 동시에 터지는 날에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2001/02시즌 동부파이널 뉴저지와의 대결에서 4쿼터 23점 차이를 뒤엎는 괴력은 이들을 '다이나믹 듀오'로 부르기 족했다.

그러나 이 당시 셀틱스는 골밑이 너무나 허약했으며 듀오에게 모든 걸 거는 경기스타일은 너무나 불안했다. 듀오가 터지는 날에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지만, 그들이 모두 막히는 날에는 답이 없는 농구. 점점 그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리그 최고의 '난사 듀오'라는 악명으로 나타났다(물론 워커는 예전부터 난사가 심각했지만, 피어스마저 닮아갔다). 결국, 셀틱스의 선배스타이자 신임 데니 에인지 단장에 의해 다이나믹 듀오는 해체되고 만다.

그날 이후로 셀틱스의 우울한 나날이 시작된다. 데니 에인지 단장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팀운영을 해댔고, 전력 강화는 저 멀리 떠났다. 고만고만한 유망주들을 데리고 피어스는 고군분투를 했고 그에겐 경기중 더블팀, 트리플팀이 들어오기 일쑤. 급기야 지난 시즌 6'6"(198cm)의 가드 겸 포워드인 폴 피어스가 파워포워드로 출전하기까지….

그러나 올 시즌 셀틱스와 피어스는 마음이 든든하다. 바로 레이 알렌과 케빈 가넷이라고 하는 최고의 무기를 얻었기 때문. 오프시즌, 레이 알렌이 언론에 한 인터뷰. "우린….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죠"가 이들이 가진 울분과 그동안의 서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 리그 최강의 트리오를 보유하게 된 셀틱스가 올 시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보자.

07/08 보스턴의 현안

1. 부족한 백업

알렌과 가넷을 얻으면서 셀틱스의 출혈도 컸다. 그동안 모아왔던 유망주들을 대거 내주었고, 샐러리도 크게 치솟아 미래를 내다보기엔 결과를 내줘야 하는 시간이 짧다. 특히, 강력한 주전 라인업에 비해 부족한 백업은 문제.

개선 방안: A - 스캇 폴라드가 예전 킹스 시절의 반만 해준다면 천군만마.
                   B -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레이 알렌의 백업이 절실하다.

2. 건강

주축 3명이 팀의 모든 것. 부상당하지 마라.
개선 방안: 셀틱스를 응원하는 자. 언제나 기도하라.

3. 닥 리버스

도대체 왜 닥 리버스를 고집하는 것인지. 지난 시즌에는 시즌 중 아들 대학 농구 응원을 가 구설수에 올랐다.  

개선 방안: A - 현재까지는 잘 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보면 특별한 전략, 전술이 없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B - 지금은 잘 나가지만 여전히 현지에서도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


NBA 프리즘 연재를 마칩니다. 관심있게 지켜봐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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