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윤준석 기자) 이강인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지만,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다.
한국 선수로는 박지성 이후 1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두 번째 인물이 됐다.
이강인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PSG)은 1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4-202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강호 인터 밀란을 5-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꺾고 구단 창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프랑스 리그1, 쿠프 드 프랑스(FA컵), 트로페 데 샹피옹(슈퍼컵)을 석권한 데 이어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더하며, 프랑스 구단 최초의 4관왕이란 위업도 함께 달성했다.
이날 결승전에서 PSG는 조직력, 압박, 속도, 개인기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 12분 아슈라프 하키미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한 PSG는, 이후 데지레 두에가 멀티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후반전에는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와 세니 마율루의 추가 골까지 터지며 PSG는 유럽 클럽대항전 역사상 결승전 최다 골차 승리(5-0)라는 대기록까지 함께 세웠다.
이 승리는 1994년 AC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4-0으로 이겼던 기록을 31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팬들의 눈길은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그 인물은 바로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 이강인이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 팀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데 그쳤지만, UEFA 공식 출전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PSG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강인의 결장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이후 8강부터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루이스 엔리케 PSG 감독은 후반전에 교체 카드를 모두 활용하며 다수의 선수들에게 결승전 출전 기회를 부여했지만, 이강인의 이름은 끝내 호출되지 않았다.
크바라츠헬리아, 파비안 루이스, 주앙 네베스를 대신해 곤살로 하무스, 워렌 자이르-에메리, 마율루가 교체 투입됐고, 누누 멘데스 대신 뤼카 에르난데스가 들어왔다. 그러나 이강인은 마지막까지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비록 출전은 불발됐지만, 이강인이 이번 PSG의 4관왕 여정에서 공헌한 바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시즌 초반부터 중반까지 리그와 컵 대회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PSG의 전력에 힘을 보탰다.
이강인은 이날 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동료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박지성 이후 1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두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박지성은 2007-2008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나, 당시 결승전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강인의 경우 결승전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박지성의 경우와는 차별점이 있다.
이번 우승은 이강인 개인 커리어에서도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그는 2019년 FIFA U-20 월드컵 준우승과 골든볼 수상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후 스페인 라리가 발렌시아, 마요르카를 거쳐 2023년 여름 PSG로 이적했다.
PSG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 팀이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이강인도 자연스럽게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손에 넣게 됐다.
결승전 종료 후 PSG 선수단이 트로피 시상식에 나서는 장면에서도 이강인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교체 명단에 있던 선수로서 당당히 시상식 무대에 올랐고, 팀 동료들과 함께 우승컵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희의 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최근 유럽 현지 언론들은 이강인의 여름 이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출전 시간 부족과 전술적 비중 축소가 주요 원인이다.
프랑스 매체 '풋메르카토'가 최근 "이강인은 PSG의 전술 구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번 여름 팀을 떠날 가능성은 현실적"이라고 보도한 데 이어, 잉글랜드 현지 매체들도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맨유 등이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적설이 한창인 가운데, 선수 본인에게는 이번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새로운 출발점에 큰 힘을 보탤 가능성도 있다.
23세의 이강인은 여전히 성장 가능한 잠재력을 지닌 선수이며, PSG에서의 경험은 분명히 그의 유럽 무대 커리어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더 많은 출전 시간, 더 많은 기회를 찾기 위한 선택이 곧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강인은 박지성 이후 17년 만에, 그리고 손흥민도 이루지 못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며 다시 한번 한국 축구의 위상을 유럽 무대에 각인시켰다.
비록 그라운드 위가 아니라 벤치에서의 우승이었지만,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강인의 다음 행보가 어느 팀, 어느 무대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이날 밤 뮌헨에서의 트로피 세리머니는 한국 축구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예정이다.
한편, PSG는 이번 우승을 통해 프랑스 축구 역사상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프랑스 구단이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것은 1993년 올랭피크 마르세유 이후 무려 32년 만이다.
그리고 PSG는 리그1, FA컵, 슈퍼컵에 이어 유럽 무대까지 완벽히 정복하며, 프랑스 클럽 최초로 트레블과 쿼드러플을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팀으로 남게 됐다.
사진=연합뉴스/이강인 인스타그램/PSG/X
윤준석 기자 redrup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