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미국,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 대신 월드컵 4회 우승 경력의 유럽 강호 이탈리아를 대신 2026 월드컵에 출전시키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사의 제안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가 강력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월드컵 티켓은 정치적인 수단이 아닌, 필드 위에서 정당하게 겨뤄 따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2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파트너십 특사인 파올로 잠폴리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제안했다.
잠폴리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사업가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깝다.
이란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끝난 2026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에선 벨기에, 이집트, 뉴질랜드와 함께 G조에 편성됐는데 일단 조별리그 3경기를 전부 미국에서 치러야 한다.
이란은 지난달 초 미국과 교전이 시작된 뒤 정부 차원에서 2026 월드컵 불참을 선언했으나 곧장 이를 번복했다.
이란 대표팀은 지난달 말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전지훈련을 치르며 나이지리아, 코스타리카와 A매치 평가전을 치르는 등 월드컵에 가고자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 측근 인사가 이란의 월드컵 출전권 강제 박탈 및 이탈리아 대타 출전을 권유하고 나선 것이다.
잠폴리는 파이낸설 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에게 월드컵 본선에 이란 대신 이탈리아를 합류시킬 것을 제안한 게 사실"이라며 "난 이탈리아 태생이고,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팀의 별칭)'을 보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네 차례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그들(이탈리아)은 (대체) 출전을 정당화할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의 2026 월드컵 출전은 트럼프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견해까지 나왔다.
최근 미국의 이란 침공에 대해 교황 레오 14세가 비판을 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성격으로 원색적인 비난을 내놓았다.
그러자 멜로니 총리는 교황의 평화 메시지를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상황이다.
일단 이란 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2026 월드컵 조별리그를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FIFA는 정해진 스케줄을 따라야 한다며 거부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지난 15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이란의 월드컵 참가 여부에 대해 "이란 대표팀은 확실히 올 것"이라며 "스포츠는 이제 정치와 분리돼야 한다"는 말로 이란 대표팀이 교전국 미국에 올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도 이란 대신 자국 축구대표팀이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 측 제안을 거부했다.
24일 영국 유력지 '가디언'에 따르면 안드레아 아보디 이탈리아 체육부 장관은 "우린 필드에서 자격을 얻어야 한다"며 "이런 식의 대체는 기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로 이란 대타 출전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루치아노 부온필리오 이탈리아 올림픽위원장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모욕감도 느낄 것"이라며 "월드컵 본선 진출은 스스로 따내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1934년과 1938년, 1982년, 2006년 등 월드컵에 총 4차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세계적인 축구 강호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동유럽 복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2018년과 2022년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월드컵 본선 참가가 3회 연속 좌절되는 자국 축구사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에 이란의 월드컵 불참 가능성이 생기면서 거의 한 달 넘게 이탈리아의 대타 출전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됐으나 이탈리아 정부 차원에서 대타 출전을 배격하는 중이다.
마침 이란 측도 잠폴리의 행태를 맹비난한 상태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은 이날 SNS를 통해 "축구는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것"이라며 "월드컵에서 이란을 배제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도덕적 파산을 보여줄 뿐이다. 미국이 이란 선수 11명의 존재조차 두려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6월16일 LA에서 뉴질랜드전을 치르며, 22일에도 같은 곳에서 벨기에를 상대한다. 이어 시애틀로 자리를 옮겨 27일 이집트와 격돌한다.
이란의 2026 월드컵 참가 여부는 50일도 남지 않은 대회 정상 개최의 가장 큰 열쇠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