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CEO
(엑스포츠뉴스 유희은 기자) 홍대 삼겹살집 앞, 재계 총수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 경제와 반도체 협력을 이야기하던 그가 불쑥 한 이름을 꺼냈다.
"마이 프렌드 페이커, 두 유 노 페이커?" 외국인에게 한국을 자랑할 때 쓰던 그 말을, 세계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의 수장이 거꾸로 시전한 순간이었다.
황 CEO의 이번 방한은 여러모로 평범하지 않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의 재방문이자 4박 5일에 걸친 긴 체류다. 대만 컴퓨텍스 2026 일정을 마치자마자 곧장 한국으로 건너왔고, 머무는 동안 재계 총수들과의 만찬, 국내 게임사 대표 면담, 스타트업 간담회, 7일 야구 시구까지 일정을 빼곡히 채웠다.

젠슨 황 CEO와 T1 선수단
그 빡빡한 일정의 첫 칸이 e스포츠였다.
당초 황 CEO는 오후 5시께 입국해 서울 성수동에서 총수들과 만찬 회동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입국 시각은 오후 1시로 앞당겨졌고, 첫 행선지는 서울 마포구의 'T1 베이스캠프'로 바뀌었다. 재계 거물도, 인공지능(AI) 스타트업도 아닌 '페이커' 이상혁과 T1 선수단이 그의 한국 첫 일정이 됐다.
현장에서도 '페이커'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황 CEO는 팬에게 경품을 건네며 "페이커 알죠? 친구예요?"라고 말했고, 한국이 e스포츠와 관람 문화를 만들어낸 곳이라고 강조했다. e스포츠가 한때 사회적 눈총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 할 만한 장면이다.
황 CEO의 이런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코엑스 무대에서도 그는 관객과 함께 '페이커'를 연호했고, PC 게임과 PC방,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게임 문화를 향한 그의 관심이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페이커' 이상혁
왜 '페이커'였을까.
그는 2013년 데뷔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에서만 여섯 차례 정상에 올랐고, LCK 우승 10회 등 기록을 쌓으며 명실상부 종목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한국 e스포츠를 한 장면에 압축해 보여줄 인물로 '페이커'만 한 선택지는 없는 셈이다.
물론 이 만남을 순수한 팬심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같은 날 저녁 삼겹살 자리에서 황 CEO가 던진 메시지는 반도체와 AI였다. 그는 한국 기업들의 성장을 치켜세우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고, 신제품에 들어갈 메모리 수요를 언급했다.
e스포츠를 향한 애정 표현이, 한국 게임·하드웨어 시장을 AI 시대의 파트너로 끌어안으려는 그림의 출발선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다. 세계 최정상 기업의 수장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만난 상대가 '페이커'였다는 사실이다.
e스포츠가 곁가지로 취급받던 시절은 지났다. 이 관심이 국내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그 위상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는 그의 첫 행선지가 말해준다.
사진 = 연합뉴스, 엑스포츠뉴스 DB
유희은 기자 yooheeki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