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손흥민의 '특급 도우미'로 활약했던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가 작별을 앞두고 있다.
유럽 A급 공격형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오는 6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만료된 뒤 새 행선지를 찾아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럽 축구 이적시장 전문가 파브리치오 로마노는 지난 17일(한국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에릭센은 다가오는 여름 맨유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에릭센은 맨유와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이적시장에 나가 새 행선지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로마노는 지난해 가을부터 맨유가 에릭센과 재계약할 생각이 없음을 알렸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인다.
에릭센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익숙한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토트넘에서 뛸 때 손흥민, 해리 케인, 델레 알리와 함께 토트넘의 'DESK 라인'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4명 유니폼 등록명을 따고 나니 DESK가 만들어졌다. 델레의 D, 에릭센의 E, 손흥민의 S, 케인의 K로 DESK가 완성됐다.
1992년생으로 손흥민과 동갑내기인 에릭센은 2010년 네덜란드 최고 명문 아약스에 입단하면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덴마크 축구가 낳을 테크니션으로 그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끝에 2013년 토트넘과 계약하고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손흥민이 2년 뒤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합류하면서 둘은 좋은 콤비플레이를 곧잘 만들어냈다. 손흥민이 10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125골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에릭센의 어시스트가 10개로 2위다. 케인이 24도움으로 손흥민 최고의 도우미인데 그 다음이 에릭센인 것이다.
손흥민 역시 에릭센의 특급 도우미였다. 에릭센이 토트넘에서 넣은 프리미어리그 51골 중 6골을 손흥민이 도왔다. 손흥민과 케인이 2019년 11월 조세 무리뉴 감독이 토트넘에 온 뒤 환상적인 콤비로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고려하면 손케 콤비 이전에 '손에 콤비'가 있었던 셈이다.
에릭센은 상대 수비를 한 번에 무너트리는 창의적인 친투패스가 일품이다. 여기에 프리미어리그 연차가 쌓이면서 활동량도 겸비, 패스만 뿌릴 줄 아는 플레이메이커에서 중원을 활발하게 누비는 '박스 투 박스' 스타일의 중앙 미드필더로 진화해 나갔다.
순탄했던 에릭센의 축구인생은 코로나19로 1년 미뤄져 지난 2021년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에릭센은 2020년 토트넘을 떠나 이탈리아 명문 인터 밀란으로 이적한 상황이었는데 이듬해 유럽선수권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충격적인 일을 겪은 것이다.
실제 에릭센의 심장은 5분간 멈췄고, 생사를 넘나들었다.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으나 몸 속에 ICD(이식형 심장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ICD를 삽입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이탈리아 규정에 따라 FA로 풀린 그는 2022년 1월 브렌트퍼드와 단기 계약을 체결한 뒤 자신의 건강함을 알렸고, 그 해 여름 맨유와 사인하면서 빅클럽으로 돌아왔다.
에릭센은 맨유에서도 에릭 텐 하흐 전 감독 아래서 부지런히 뛰었다.
다만 토트넘 시절과 같은 번뜩이는 감각은 사라졌고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맨유에서 2년 반 넘게 공식전 93경기를 뛰었지만 7골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는 선발로 뛰는 경기도 대폭 줄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22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이 중 10번이 교체투입이었다.
이번 시즌에도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25경기를 뛴 가운데 출전 회수는 절반 가량인 13번에 불과하다. 선발은 그 중 절반인 7차례다.
지난해 11월 후벵 아모림 감독이 맨유에 부임하면서 에릭센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코비 마이누, 아마드 디알로와 같은 20살 전후 어린 선수들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에릭센은 계속 배제되는 상황에 몰렸다. 최근엔 자신을 선발로 집어넣지 않는다며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에릭센은 이제 새 길을 찾아봐야 한다. 기량 자체가 크게 녹슨 것은 아니지만 33살이라는 나이는 그를 원하는 프리미어리그 구단들 입장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ICD를 삽입하고 뛴다는 점도 새 행선지 물색에 변수다. 손흥민과 토트넘에서 재회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다.
다만 은퇴를 머릿 속에 그려넣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어리그를 떠나면 에릭센이 활약할 무대는 얼마든지 있다. 이탈리아나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도 있고, 고향 덴마크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태울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