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2.17 13:47 / 기사수정 2009.02.17 13:47

▲ ‘야구 명문’으로 유명한 부산고등학교 전경
[엑스포츠뉴스=유진 기자] 프로스포츠나 학원스포츠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어렵지만, 코치직에 대한 수행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고교야구에서 전체 게임 판도를 정하고 큰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감독이지만, 선수들의 세부적인 움직임 하나 하나를 보살펴 주는 것은 코치들의 몫이다. 또한 많은 선수들을 하나하나 보살피는 것도 감독이 해야 할 일이지만, 이를 보조하는 코치들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을 그라운드에 두고 펑고(fungo)를 쳐 주는 일, 프리배팅을 위한 공을 던져주는 일을 포함하여 제자들을 위한 ‘굳은 일’은 보통 감독이 아니라 코치가 직접 해 주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과 직접 살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감독이 아니라 오히려 코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부산고등학교 김청수 코치는 경기 전 제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점검하고 몸소 배팅 볼을 던져주거나 펑고를 쳐 주는 일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 ‘열혈 수석코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성장 과정에 보람을 느끼며, 성적보다는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야구인이기도 하다. 특히, 14일 천우스포츠배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부산고가 광주일고에 4:8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1패보다는 선수들의 기량 성장에 더 큰 점수를 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제자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김청수 수석코치를 14일 경기 후 부산고등학교 그라운드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과 현역 시절 이야기
Q : 오늘(14일) 경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아직까지 ‘선수 김청수’로서 코치님을 기억하는 팬 여러분들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김청수(이하 ‘김’으로 표기) : (웃음) 저보다 야구 잘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제가 팬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은 제가 부산고등학교에 있지만, 어디에 있건 간에 성실하고, 팬들에게 한 발짝 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선수를 만들어서 (프로에) 보내는 것이 제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 옛날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우선지명으로 프로에 입문하셨는데, 방어율을 비롯한 성적이 신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 당시 추억을 떠올리신다면요?
김 : 추억이라… 아무래도 좋은 추억보다는 그렇지 못한 기억이 많았죠(웃음). 제가 1989년신인 시절에 15패를 했어요. 그런데 그 중간에 0:1로 진 경기가 세 번이었고, 1:2로 진 경기도 세 번 정도였어요. 시즌 초반에 패배 숫자가 많았지만, 방어율은 2점대였죠. 이러다보니 첫 승은 7월 24일에야 가능했습니다. 결국 첫 해에 제가 7승을 했습니다(주 : 김청수 코치는 1989년, 방어율 3.38, 7승 15패 5세이브, 10완투, 210 1/3이닝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Q : 신인이 프로에서 7승을 거두기란 지금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박정현(당시 태평양 돌핀스. 1989년 신인왕) 선수만 아니었다면 신인왕도 가능하셨을 텐데?
김 : 당시 어우홍 감독님께서 저를 참 예뻐하셨어요. 그래서 1989 시즌을 앞두고 부산 KBS 프로그램에 쟁쟁한 선배님들을 제치고 제가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몇 번 NG가 났었습니다. 그 이유가 ‘프로에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 (방송 관계자들은) 저에게 ‘신인왕이 목표다’라는 답변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제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신인왕이 목표가) 아니다. 나는 김청수라는 이름이, 우리 팀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어야 신인왕이고 뭐고 할 것이 아니냐”고 답변을 했어요. 이 때문에 몇 번이나 NG를 냈습니다(웃음). 결국 나중에 감독님이 “야, 이놈 고집 한 번 세네. 그냥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Q : 현재 부산고 감독이신 김민호 감독님과도 롯데에서 한솥밥을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김 : 맞습니다. 그때에는 감독님이 4번을 치셨고, 저는 감독님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지냈죠. 그런데 김민호 감독님께서 제가 등판하는 날이면 으레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셨어요(웃음). 그래서 심지어는 “(김)청수 던지는 날에는 나를 (타선에서) 빼 달라”는 소리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그 다음 해인 90년도에 제가 던지는 날에는 김민호 감독님이 4타수 2안타도 치면서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하셨어요. 그러면서 “작년(1989)에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에피소드라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신인 때에는 정말로 야구하기 싫었습니다(웃음). 지금은 MBC ESPN 해설을 하고 계시지만, 허구연 당시 투수코치님이 맥주 반 잔도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대전 원정경기에서 밤에 저를 부르시더니, 술을 한 잔 따라주시더군요. 저는 술을 좀 하는 편이었습니다. 술을 한 잔 하시면서 (허구연) 코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에게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해 줄 말은 없고, 딱 한 마디만 할게. 청수야!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참 흔한 말이지만, 지금 네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맞는 말인 것 같다”라고 하시더군요. (승리 숫자에 비해 패배 숫자가 많아) 야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제 마음을 다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조언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힘들었을 때의 경험’을 접목시켜서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면 (제자들이) 곧잘 힘을 내지 않겠습니까?
▲ 김청수 코치는 현역시절 에피소드와 코치로서 바라보는 학생야구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이것이 학생야구의 매력!
Q : 은퇴 이후 중학야구 감독을 거쳐 현재 고교야구 수석코치로 자리잡으셨는데, 김청수 코치님께서 생각하시는 고교야구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김 : 고교야구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실수가 많습니다. 영글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은 선수들이 많은데, 이러한 선수들이 실수 속에 성장하는 것이 고교야구의 큰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보람을 찾지요.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늘 비록 못했지만, 성장하는 속도가 눈에 보일 때’에 큰 재미를 느낍니다. 그 재미로, 그 보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엊그제(12일) 경기에서 개성고에 0:10으로 패한 것도 2루수들이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경기 이후 (2루수를 봤던)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내야 펑고를 많이 쳤어요. ‘실수하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2시간 동안 한 1,000번은 쳤던 것 같습니다. 자식 같은 제자들인데, 안쓰럽기도 했죠. 그런데 여기서 힘들다고 중단하면 과연 그것이 득일까 실일까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펑고를 받아냈는데, 연습의 결과는 확실히 오늘(14일) 경기에서 드러났습니다. 2루 쪽으로 어려운 타구가 7개 정도 갔는데, 무난히 잡아서 처리했죠. 이러한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고교야구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Q :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오늘(14일) 경기를 100점 만점에 몇 점 주고 싶으십니까?
김 : 사실 평상시 게임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 경기에서 광주일고 상대로 4:8로 패한 경기는 40점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 근래 성장하는 속도를 봐서는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눈에 띄게 야구하는 실력이 늘고, 야구하고자 하는 의욕도 증가했기 때문에 100점 만점, 아니 그 이상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선수들에게 하지는 않습니다(웃음). 경기 결과에 만족하여 안주하면 안 되니까요.
Q : 김민호 감독님 아들(김상현, 동국대 2학년)도 제작년에 부산고등학교 멤버로 활약하면서 부자가 나란히 한 학교에서 활약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김 : 그랬습니다. 아쉽게 프로에 못 갔지만, 이는 어깨가 좋지 않아서 그랬던 측면도 있습니다. ‘아버지만큼의 선수가 되었으면’ 더 없이 좋겠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부상으로 어깨 수술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한 것 같습니다. (김)상현이가 수술받는 그 날, 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아직까지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어깨수술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보냈는데, 저 역시 ‘나 네가 보낸 문자 안 지웠다. 네가 성실성을 잃으면 이것을 보여 줄 것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영원히 지우면 안 되겠죠(웃음).
Q : 다음 달이면 전국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한 자리에 모이는 ‘황금사자기 전국대회’가 열립니다. 소속팀 부산고등학교,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것으로 보십니까?
김 : 작년에는 외부에서 평가하는 저희 학교 전력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결국 우승은 못 했습니다. 이것이 야구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같지 않아서 외부에서 저희 학교 전력을 상당히 낮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이 외부 평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최소 두 경기는 더 이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의외의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현장에서 듣는 학원스포츠의 애로사항
Q : 이번에는 조금 원론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학원스포츠의 애로사항은 무엇입니까?
김 : 아무래도 학원스포츠는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크죠.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힘들다고 봅니다. 그나마 부산고등학교는 동창회 지원이 넉넉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해줄 때에는 더 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가 공부에 대한 문제입니다. 부산고등학교는 1주일에 두 번씩 (대학교) 영문학과 학생들을 불러 영어 공부를 시킵니다. 지금 몇 개월째 야간 훈련 안 하고 (영어 공부를)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선수들도 야구 이전에 학생인데, 공부를 하지 않은 부분은 저도 지나고 보니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수업을 상당히 강조하십니다. 감독님께서 “내가 수업을 들어가라고 지시하면, 무조건 들어가라. 수업을 빼먹으면, 그 때에는 야구방망이가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금전문제, 학습문제)는 학원스포츠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후배 야구선수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김 : 저희 선수들을 포함하여 모든 선수들이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에 입문하면 누구나 스타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스타, 슈퍼스타는 그야말로 한 두명에 불과합니다. 힘들더라도 대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잊지 말고 거기에 맞춰 항상 노력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는 마음이 흐트러져 구설수에 올라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에 등장하는 일부 선수들이 있는데, 저는 후배들, 제자들이 야구를 못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는, 그런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후배들이) ‘사람다운 야구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미가 묻어나는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 김청수는 누구?
마산중학교 – 마산상업고등학교 – 동아대학교를 거쳐 1989년 신인 1라운드 우선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왕년의 에이스’다. 신인 첫 해, 38경기에 등판하여 210과 1/3이닝동안 완투 10회를 포함하여 방어율 3.38, 7승 15패 5세이브를 기록하여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신예 박정현과 신인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1990년 11승, 1991년 10승 등 롯데 마운드의 중심축이었던 그는 샌디 쿠펙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짧고 굵게’ 선수시절을 마감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4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방어율 3.89, 31승 38패 8세이브, 262 탈삼진을 기록하였다. 구위에 비해 승운이 없었던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 중학야구부 지도자를 거쳐 현재는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수석코치로써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청수 코치는 “다음에는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면서 제자들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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