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6-05-1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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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호, '우상' 앙드레김과 같은 무대 섰는데…돌연 산속 들어간 이유 (백만장자)[종합]

기사입력 2026.05.14 09:12 / 기사수정 2026.05.14 09:12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최복호 디자이너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최복호 디자이너


(엑스포츠뉴스 김수아 기자)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가 인생 역전기, 그리고 자신을 살린 '자투리 천'을 통한 나눔의 삶을 전했다.

13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이하 '백만장자')에는 산속에 2500평 양장점을 차린 '패션 부자' 최복호가 출연했다.

최복호는 1973년 데뷔한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로, 53년째 현역으로 활동하며 누적 매출 5000억 원을 기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방송에서 단연 가장 눈길을 끈 건 깊은 산속에 자리한 최복호의 2500평 규모 양장점.

사진 = EBS 방송 화면
사진 = EBS 방송 화면


18년 전 주변의 만류를 뒤로한 채 산으로 들어간 최복호는 "백화점 시스템 안에서는 사라져버린,  맞춤 의상을 만들며 나누던 고객과의 대화가 그리웠다"고 이유를 밝혔다.

산속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이 양장점은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방문객이 1000명~1500명, 월 매출은 최대 6000만 원에 달한다고.

최복호는 패션 감각이 남달랐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옷에 관심을 갖게 됐고, 패션계 전설 앙드레김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대학까지 중퇴한 그는 전역 후 앙드레김을 배출한 복장학원에 입학했고, 산업화와 환경 문제를 고발한 파격적인 데뷔작으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최복호 디자이너, 인생사 공개
최복호 디자이너, 인생사 공개


앙드레김의 스승이자 패션계 대모였던 최경자 이사장의 눈에 띄어 문하생으로 발탁되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 양장점에 취직한 그는 일주일 만에 임금 '800원'을 받고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제작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결국 지인의 양장점에서 무급 실습생으로 기본부터 다시 배운 그는 절치부심 끝에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이대 양장점 거리에서 정식 디자이너로 재취업했다.

이후 서울에서 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대구로 돌아왔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는 과감한 실루엣의 빽바지로 젊은층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백화점에 모피 매장까지 열며 사업을 확장했으나 백화점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빚을 갚아야 했다.

최복호 디자이너,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출연
최복호 디자이너,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출연


모든 것을 잃은 절망의 순간, 동료 디자이너들이 자투리 원단을 보내왔고 시장 상인들도 선뜻 재료를 내어줬다.

최복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가 살아난 거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인간의 도리"라며 지금까지도 대구 원단만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그는 어깨 패드 재킷, 일명 '가짜 가다마이'로 1980년대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는 브랜드 대표로 자리 잡았다.

이후 런던, 밴쿠버, 뉴욕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넓혔고, 마침내 오랜 우상이었던 앙드레김과 같은 무대에 서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찾아왔다.

최복호는 "받은 만큼 나누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008년부터 자투리 원단으로 인형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어 감동을 더했다.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부자의 은밀한 사생활을 관찰하며 이들을 성공으로 이끈 일상 속 비범함을 발견하고, 깊이 있는 토크를 통해 부자의 사고방식, 가치와 철학을 들어보며 진정한 부의 의미를 조명하는 교양 예능이다.

지난 2월에는 제20회 KBCSD 언론상 시상식에서 TV방송 부문 우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영향력을 입증했다.

사진 = EBS

김수아 기자 sakim4242@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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