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삐약이'라는 친근한 애칭도 좋지만 이젠 실력으로 증명할 때다.
여자 탁구 간판 신유빈(대한항공·세계 12위)이 2년 3개월 만에 국제대회 여자단식 우승 찬스를 잡았다.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이 전부 불참한 가운데 다음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선수들과의 2연전이 불가피하다.
두 차례 한·일전을 이겨내야 꿈에 그리던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챔피언스 첫 우승 트로피를 품고 세계랭킹도 한 자릿 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신유빈은 지난 8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쥐바그 에네르기 아레나에서 열린 WTT 챔피언스 프랑크푸르트 대회 여자 단식 8강에서 루마니아의 36세 베테랑 엘리자베타 사마라(세계 29위)를 게임스코어 4-0(11-9 11-4 11-5 11-4)으로 완파했다.
사마라는 16강에서 이번 대회 4번 시드를 받은 일본의 강자 오도 사쓰키(세계 14위)를 게임스코어 3-2로 누르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신유빈 앞에선 범실이 속출하면서 순식 간에 무너졌다. 신유빈은 불과 24분 만에 사마라를 제압하고 체력을 아꼈다.
이번 대회는 준결승과 결승이 같은 날 열리기 때문에 신유빈 입장에서 8강전을 어렵지 않게 끝낸 것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유빈은 9일 오후 8시 일본 최강자 하리모토 미와(세계 7위)와 숙명의 한일 에이스 대결을 벌인다. 하리모토는 오빠인 남자단식 세계랭킹 4위 하리모토 도모가즈와 함께 일본 탁구를 이끌어가는 남매다. 중국인 부모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남매를 낳았고 둘이 톱클래스 탁구 선수로 성장했다.
이번 대회에서 쑨잉사(세계 1위)와 왕만위(세계 2위), 친신퉁(세계랭킹 3위), 왕이디(세계랭킹 4위), 콰이만(세계랭킹 5위), 천이(세계랭킹 8위) 등 중국 톱랭커들이 8일 개막한 중국 전국체전에 참가하느라 모두 불참하면서 이번 대회 1번 시드를 받았다.
신유빈은 하리모토를 이기고 결승에 갈 경우, 이번 대회 2번 시드 이토 미마(세계 9위), 3번 시드 하야타 히나(세계 13위) 등 두 일본 선수가 벌이는 또 다른 준결승 승자와 만나 우승컵을 다툰다. 두 번의 한·일전을 이겨내면 한국 탁구 여자단식 최초의 WTT 챔피언스 우승자가 된다.
일본은 2010년대부터 여자 탁구에서 한국을 따돌리고 중국 다음의 실력을 구축했다. 최근 네 차례 올림픽 중 3차례 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신유빈 입장에선 일본 선수들도 까다로운 상대임에 틀림 없다. 신유빈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 여자단식에서 4번 시드를 받은 뒤 8강에서 일본의 히라노 미우를 누른 뒤 4강에서 천멍(주욱)에 패하고 하야타와 동메달 결정전을 치러 아깝게 패하기도 했다. 일본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선수들 만큼 힘든 상대 역시 결코 아니다. 신유빈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번이 WTT 챔피언스 여자단식 우승 트로피를 처음 거머쥘 수 있는 찬스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WTT는 투어대회를 5등급으로 구분하는데 최상급 시리즈가 WTT 그랜드 스매시, 그 다음이 WTT 챔피언스다. WTT 스타 컨텐더, WTT 컨텐더, WTT 피더가 각각 3~5번째 등급의 대회다.
신유빈은 지난 2023년 8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WTT 스타컨텐더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여자단식 마지막 트로피 획득이다. 챔피언스 정상에 오른 적은 아직 없다.
다만 직전 대회였던 WTT 챔피언스 몽펠리에에서 천이를 물리치며 4강에 올랐고, 지난달엔 챔피언스보다 한 단계 높은 WTT 그랜드 스매시 베이징 대회에서 콰이만을 16강에서 따돌리며 4강까지 내달리는 등 기세가 좋아 일본 선수들과도 좋은 승부가 예상된다.
신유빈은 지난 두 차례 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파리 하계올림픽에선 혼합복식과 여자단체전 동메달을 연달아 따내며 12년간 끊어졌던 한국 탁구의 올림픽 메달 맥을 이었다.
하지만 여자단식에선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고 이번에 좋은 기회를 잡았다. 언제까지 별명인 '삐약이'로 인기를 얻을 순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한다.
삐약이가 아닌 챔피언으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신유빈에게 다가오고 있다.
사진=WTT / 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