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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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왕년의 女스포츠스타, 어떻게 지내나

기사입력 2013.12.23 16:08 / 기사수정 2013.12.23 16:08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 중인 중년 여배우들의 여행기가 화제다. 연령, 성격이 제각각인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스토리에 대중들의 관심이 적지않다. '꽃보다 누나'는 스포츠에서도 통용된다. 세계 스포츠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누나들의 근황을 알아봤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코마네치

루마니아 출신 나디아 코마네치는 세계 체조 역사상 최초로 만점을 받았다. 이후 현역생활 중 7번의 만점 플레이를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규정상 10점 만점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니 코마네치가 이룬 금자탑은 앞으로도 전설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코마네치가 활약하던 당시 루마니아는 독재정권이 기세를 떨치던 때. 철저한 관린, 규제로 어항 속 물고기 신세였던 코마네치는 은퇴 후 코치생활을 하다 끝내 미국으로 망명했다. 시련 많은 타향살이였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버트 코너와 결혼한 뒤 안정을 찾았다.

코마네치는 현재 기부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페셜올림픽 위원장, 체조전문잡지의 편집장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스포츠스타에서 망명한 이야기까지 국제연합(UN), 세계인권위원회 등에서 끊임없이 강연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코마네치는 이 이야기를 묶어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한 스포츠용품 업체에서는 코마네치의 선수 시절 영상을 배경으로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광고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 당시 영상은 실제로 코마네치의 전성기 장면을 담아 제작했다고. 제작사 측은 ‘만점자’라는 이유 만으로 전달 포인트가 확고해 캐스팅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美 여자스포츠의 상징, 미아햄

여자축구의 전설 미아햄의 풀네임은 마리엘 마가렛 햄(Mariel Margaret Hamm)이다. 익숙한 미아햄은 닉네임이다. 그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여자축구대표팀에 발탁됐다. 올림픽과 여자월드컵에서 각각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었다. 미아햄은 출전한 모든 메이저대회에서 팀을 3위 이내로 이끈 유일한 선수다. 지난 2004년 발표된 FIFA(국제축구연맹) 100주년 기념 '위대한 선수' 목록에 여자선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7년 대표팀에서 뛰며 275경기에 출전해 158골을 넣었다.

미아햄은 2004년 은퇴한 뒤 골수 이식 장려 운동과 자선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미국대표팀의 기술자문 위원으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FC바르셀로나의 홍보대사 역할도 맡고 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 타자였던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열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최근 행복한 가정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인터뷰가 나오기도 했다. 

박세리의 라이벌이었던 소렌스탐

스웨덴 출신 아니카 소렌스탐은 어린시절 축구, 스키, 골프 등 다양한 종목에 재능을 보였다. 가족의 권유로 골프 클럽을 잡았고 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4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신인상을 비롯해 2008년 은퇴할 때 까지 올해의 선수상을 8차례 수상할 정도로 정상급 기량을 선보였다. 통산 투어 우승을 98회 달성했고 지난 2003년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LPGA챔피언십,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에서만 10승을 챙겼다.

은퇴 후 소렌스탐은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카(ANNIKA)’ 브랜드로 골프아카데미, 골프코스디자인, 화장품, 의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골프코스디자인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소렌스탐이 설계한 코스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남아공, 말레이시아 등. 2016 리우올림픽 골프장 설계 입찰에 참가하기도 했다. 요리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각종 요리교실, 품평회 등에 참석하기도.

한국 쇼트트랙의 맞수였던 양양A

동계올림픽 때마다 한국여자 쇼트트랙의 맞수였던 중국선수로 양양A가 꼽힌다. 이름에 ‘A’라는 글자가 포함된 까닭은 동명의 선수가 있었기 때문. 중국정부는 동명 구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사회에 진출한 이를 ‘A’라 칭한다. 이후 A보다 나이가 많으면 ‘L’ 반대의 경우에는 ‘S’를 사용한다. 쇼트트랙 올드팬들은 양양S에 대한 이름도 낯익다. 둘의 생년월일은 한달 차이에 불과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양양 A와 S로 구분됐다.

중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였던 양양A는 3차례 올림픽(1998~2006)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중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자, 가장 많은 메달을 확보한 선수가 됐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무려 3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양양A는 스포츠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중국에서는 선수교육재단이사와 동계스포츠 보급을 위해 최신식 아이스링크를 공동설립했다.

서영원 기자 sports@xportsnews.com

[사진=코마네치 ⓒ 엑스포츠뉴스DB] 

서영원 기자 schneider19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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