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우진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애틀 매리너스가 구단 역사를 대표하는 전설 스즈키 이치로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동상 제막식이 뜻밖의 해프닝으로 화제를 모았다.
감동으로 채워져야 할 순간, 동상의 상징과도 같던 배트가 공개 직후 꺾여버리면서 현장은 웃음과 당혹감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다만 이치로는 특유의 여유로 이를 받아쳤고, 시애틀 구단 역시 재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며 오히려 또 하나의 '이치로다운 장면'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11일(한국시간) "매리너스가 시애틀 T-모바일 파크 외부에서 이치로를 기리는 동상 제막식을 열었는데, 정말 끔찍하게 잘못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행사 자체는 구단 레전드를 예우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그러나 동상을 덮고 있던 천이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매끄럽게 벗겨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동상 일부가 흔들린 뒤 최종적으로 천이 제거되자 이치로가 들고 있던 배트가 거의 직각에 가깝게 휘어진 모습이 드러났다.
축하의 의미로 파란색 색종이가 공중으로 쏟아진 바로 그 순간, 정작 시선은 모두 부러진 배트 쪽으로 향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매체는 오히려 그 직후 이치로 본인이 재치 있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며 현장을 다시 웃음으로 돌려세웠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이치로는 행사 직후 "마리아노 리베라가 여기까지 와서 배트를 부러뜨릴 줄은 몰랐다"는 취지의 농담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리베라가 현역 시절 특유의 컷패스트볼로 수많은 타자의 배트를 부러뜨렸던 점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단순한 유머 한마디였지만, 이치로다운 센스가 고스란히 묻어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현장에 참석한 또 다른 매리너스 전설 켄 그리피 주니어도 "내가 그런 건 아니다"라고 받아치며 웃음을 보탰다. 자칫 어색하게 굳어질 수 있었던 제막식 분위기가 레전드들의 한마디 덕분에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기억될 만한 순간으로 바뀐 셈이다.
행사를 준비한 구단도 빠르게 움직였다. 'SI'는 "사고 직후 현장 수습이 이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상이 정상 상태로 복구됐다"고 전했다.
매리너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날 진행된 '이치로 레플리카 동상 증정 이벤트' 문구까지 재치 있게 바꾸며 이번 해프닝을 스스로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당황스러운 장면을 숨기기보다 구단 차원에서 먼저 웃어넘기며 팬들과 공유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번 사건이 더 크게 회자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런 소동과 별개로 왜 매리너스가 이치로에게 동상을 세웠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SI'는 이치로가 2001년부터 2012시즌 중반까지, 그리고 2018년부터 2019년 은퇴 시점까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으며 구단 역사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짚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한 기간 동안 그는 타율 0.321, 출루율 0.365, 장타율 0.416과 함께 2542안타를 기록했고, 10차례 올스타 선정, 2001년 아메리칸리그(AL) 신인왕 및 MVP 동시 석권, 타격왕 2회, 골드글러브 10회, 실버슬러거 3회라는 압도적인 이력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전체 커리어로 범위를 넓혀도 19시즌 동안 타율 0.311, 3089안타, 117홈런, 509도루, 780타점을 기록한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치로는 이미 지난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다시 한 번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SI'는 그가 "첫 번째 투표에서 99.7%의 득표율을 받았고, 단 한 명의 투표인만이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미 매리너스는 2025년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이번에는 홈 구장 외부에 동상까지 세우며 그를 프랜차이즈의 영원한 얼굴로 예우했다.
결국 이날의 '부러진 배트' 소동은 이치로의 위상을 깎아내린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고 당황스러울 법한 순간을 유머로 승화한 그의 캐릭터를 다시 보여준 장면에 더 가까웠다.
전설을 기리는 동상은 잠시 망가졌을지 몰라도, 이치로라는 이름의 상징성만큼은 오히려 한층 더 또렷하게 각인된 하루였다.
사진=연합뉴스 / 시애틀 매리너스 X
이우진 기자 wzyfoot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