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부산, 김환 기자)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의 수장 위톨드 반카 회장이 약물을 허용하는 스포츠 대회인 '인핸스드 게임즈(Enhanced Games)'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
반카 회장은 인핸스드 게임즈에 대해 "너무나 위험한 행사이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인핸스드 게임즈에) 참가한 선수들은 보다 까다로운 약물 검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산광역시에서 열린 2025 WADA 총회 이틀째인 3일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카 회장은 인핸스드 게임즈를 반대하는 WADA의 확고한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반카 회장을 비롯해 양양 부회장, 라이언 피니 선수위원장, 올리비에 니글리 사무총장 등 WADA의 수뇌부가 참석했다.
최근 스포츠계의 화두 중 하나인 인핸스드 게임즈는 WADA가 금지하는 각종 약물 복용과 최첨단 신발, 유니폼 등 각 종목 단체가 허가하지 않는 장비 착용을 모두 허용하는 대회다.
내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각 종목마다 50만 달러(약 6억 9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첫 인핸스드 게임즈 대회가 열릴 예정이며, 이미 다수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선수들이 출전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WADA를 포함한 스포츠계에서는 스포츠 최대 가치로 꼽히는 공정성을 위협하는 인핸스드 게임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 미국 인공지능(AI) 방위산업 기업 팰런티어의 피터 틸 회장 등이 이미 인핸스드 게임즈 대회에 거액을 투자했다.
반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핸스드 게임즈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는 "내가 수개월 동안 우리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인핸스드 게임즈)은 너무나 위험한 행사이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금지 약물 복용을 허용하는 것을 우리의 취지와 정반대"라고 밝혔다.
또 "WADA에서 인핸스드 게임즈 개최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할이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다. (인핸스드 게임즈를) 반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파푸아뉴기니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 라이언 피니 선수위원장은 "선수들과 (인핸스드 게임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선수들이 '친한 선수들이 인핸스드 게임즈 참가를 결정하는 걸 보고 실망했다'고 했다"며 선수들의 반응을 전했다.
그는 "인핸스드 게임즈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은퇴가 가까운 선수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은퇴 후 커리어에 대한 계획이 없는 선수들이 유혹을 느끼는 것"이라며 "이런 것 때문에 스포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선수들이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어린 선수들에게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ADA는 점점 교묘해지는 도핑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도핑 검사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카 회장은 "현재 (AI를 활용한 도핑 검사 기술을) 연구 중"이라며 "AI는 미래에 반도핑에 활용하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 전문가들과 함께 노력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있다. AI를 도핑 검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데이터를 더 잘 이해하고 검출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양 부회장은 "도핑 분야는 굉장히 복잡하다"면서도 "다음 단계로 발전하고, 클린 스포츠를 보호하기 위해 과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AI는 중국과 미국 위주로 발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협업을 통해 업무 방식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와 WADA의 재정 상황, 최근 떠오른 WADA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난해 중국 수영 선수들에 대한 도핑 검사가 무마됐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WADA에 대한 지원을 보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며 WADA와 마찰을 빚었던 미국은 2024년 기준 WADA에 340만 달러(약 47억원)를 지원했는데, 이는 WADA 예산의 14%에 달하는 액수였다.
반카 회장은 "2019년 예산은 3700만 달러(약 543억 9000만원)였는데, 이제 우리의 예산은 5600만 달러(약 823억 2000만원)로 거의 두 배 정도 늘었다. 새로운 파트너십 덕에 정부와 스포츠계에서 지원을 받았다"면서 "우리는 재정적으로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 반도핑 기관(USADA)을 포함한 미국의 파트너들과 협업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협업에 열려 있다. 협업은 상호존중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강해지려면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 간단한 문제다. 우리가 이런 모든 과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예산이 두 배나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전에 비해 예산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반카 회장은 WADA의 신뢰성 문제에 대한 질문에 "나와 WADA와 관련해 좋은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관적인 말"이라며 "우리는 객관적으로 이 시스템을 봐야 한다. 유럽연합(EU)에서도 2년 전 150만 유로(약 26억원)를 지원햇다. 지금 시스템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국가의 법 집행기관과도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140번에 걸쳐 40톤, 800만 달러(약 117억 6000만원) 정도의 약이 압수됐다. 우리(WADA)의 정보와 내부 고발자, 그리고 기관들의 덕이다. 인터폴에서도 함께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기에는 굉장히 큰 변화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피니 선수위원장 역시 선수들의 불만 사항이 많다는 의견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반도핑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게 목표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다 보니 우리의 업적이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선수들과 함께 지역 포럼을 여는 등 협업하면서 최대한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견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교육에 전념하고 그동안 우리가 했던 성과를 이어가며 선수가 원하는 변화를 절차에 반영하고 관철시킬 것이다. 부정적인 점보다 긍정적인 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부산 총회를 통해 2027년부터 향후 6년간 모든 국제경기단체와 국가반도핑기구가 준수해야 하는 '세계도핑방지규약'이 결정된다.
반카 회장은 "이번 총회는 우리 WADA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6년에 한 번씩 모여서 어떻게 시스템을 강화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목적에 부합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이어 "2년간 협의하며 5천여 개의 의견을 받았다. 훌륭한 성과다. 특히 규제 조화 측면에서 많은 걸 이뤄냈다. 협력에 입각해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피니 선수위원장은 "선수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많은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선수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선수들이 본인들도 이 규약에 지분을 갖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새 규약을 결정하는 데 선수들의 목소리를 다수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반카 회장은 아울러 "부산 총회는 이런 협력의 축제다. 우리가 계속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굉장히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한국 외에도 개도국에 많은 지원을 보내고 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모범적인 사례를 보이고 있다. 몇 주 전 서울을 찾았을 때 KADA가 설립한 교육 기관(서울올림픽파크텔 페어플레이 그라운드)를 방문했다. 절차와 표준 등 도핑 방지 시스템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었다. 아주 좋은 예시였다"며 KADA의 행보를 칭찬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KADA와 좋은 협력 관계이며, 파트너십을 통해 협력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KADA가 내년에 20주년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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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