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원조'는 따로 있었다.
지난 2003년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이을용 현 경남FC 감독이 중국전에서 상대 선수의 뒤통수를 치고 퇴장당하며 화제가 된 '을용타' 사건이 있었다. 이는 2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감독의 두 아들인 이태석(오스트리아 빈)과 이승준(코르파칸)도 '을용타'와 관련된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고는 한다.
'을용타'보다 8년 앞선 '용수타'가 있었다. 22세, 한국 축구 차세대 골잡이로 촉망받던 한창 혈기왕성한 시절의 최용수 감독이 친선경기에서 콜롬비아 선수를 팔꿈치로 가격한 사건이었다. 퇴장당했던 이 감독과 달리 최 감독은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1995년 1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던 러시아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체제에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던 한국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꾸려 홍콩에서 열린 홍콩 구정컵에 출전했다. 이 시기 홍콩 구정컵의 스폰서가 덴마크의 맥주 회사 칼스버그의 후원을 받고 있어 칼스버그컵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의 칼스버크컵 첫 상대는 남미 전통의 강호 콜롬비아였다. 주장 완장을 찬 최전방의 최용수를 비롯해 이민성, 이기형, 윤정환, 우성용, 박충균 등 당시 한국 축구의 젊은 재능들로 꼽혔던 1973~74년생 전현직 K리그 감독들이 비쇼베츠호에 발탁돼 콜롬비아전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콜롬비아의 골문 앞에는 '미치광이 골키퍼'로 유명한 호세 레네 이기타가 버텼다.
한국은 개인 기량이 뛰어난 콜롬비아 선수들의 초반 공세에 흔들렸다. 수비수들은 콜롬비아 선수들의 전진 드리블을 막기 위해 파울을 범할 수밖에 없었고, 골문을 지키던 서동명 골키퍼도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 콜롬비아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한국은 실점을 내줄 수도 있었다.
콜롬비아의 맹공을 버텨내며 전반전을 0-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전 초반 윤정환의 환상적인 패스를 받은 최용수의 선제 득점으로 리드를 잡았다.
페널티지역 바깥쪽에서 공을 잡은 윤정환이 상대 수비 사이로 절묘한 패스를 찔렀고, 패스를 받기 위해 침투한 최용수가 이기타 골키퍼가 살짝 앞으로 나온 틈을 노려 감각적인 슈팅을 시도해 콜롬비아의 골네트를 출렁인 것이다.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한 '꾀돌이' 윤정환의 창의성과 연세대학교를 거쳐 1994년 LG 치타스에 입단, 한국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각광받던 공격수 최용수의 골 결정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연계 플레이를 통한 득점은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제1의 공격루트'로 꼽혔다.
기쁨도 잠시, 최용수가 반칙으로 퇴장당할 위기를 맞으며 분위기가 급격하게 냉랭해졌다. 수비수에게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도중 최용수의 거친 태클이 나왔고, 태클을 피한 콜롬비아 선수가 최용수의 종아리를 밟았다.
이에 격분한 최용수는 팔꿈치로 상대 선수의 급소를 가격했다. '용수타'였다. 급소를 맞은 콜롬비아 선수는 경기장 위에서 한참 동안 데굴데굴 구르며 통증을 호소했다.
레드카드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한국으로서는 다행히 주심이 최용수 감독에게 경고를 주는 데 그치며 에이스가 퇴장당하는 악재를 피했다. 콜롬비아 선수들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주심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퇴장 위기를 넘긴 최용수의 선제 결승포로 콜롬비아를 1-0으로 꺾은 한국은 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에 0-1로 패배하며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비쇼베츠 감독이 U-23 대표팀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수의 친선전을 통해 애틀랜타 올림픽을 대비한 한국은 올림픽 본선에서 윤정환의 득점으로 48년 만에 올림픽 축구에서 승전고를 울렸으나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22세였던 최용수 감독은 기대대로 성장해 1998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등 1990년대 한국 축구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클럽 축구에서는 2000시즌까지 한국에서 뛰다 2000년 말 일본 J리그로 넘어가 5년간 121경기에 출전해 75골을 터트리며 일본 무대를 휘젓다 2006년 FC서울에 합류해 같은 해 축구화를 벗었다.
지도자로 전향한 최 감독은 친정팀 FC서울 코치를 거쳐 2012시즌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잡은 뒤 2012시즌 FC서울을 K리그1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장쑤 쑤닝을 지도하다 2018시즌 막바지 서울로 돌아왔고, 2021시즌부터 2023시즌까지 강원FC 사령탑에 있었다. 최근에는 축구예능 '슈팅스타'의 감독으로 방송에 출연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 영상 캡쳐 / 한국프로축구연맹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