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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캐치 콜] 박태환도 최윤희도 소년 소녀였다

기사입력 2013.05.09 12:44 / 기사수정 2013.05.10 21:30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신명철 칼럼니스트]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 ‘마린 보이’ 박태환도 가수 유현상의 아내 최윤희도 한때는 소년, 소녀였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오는 25일부터 나흘 동안 대구에서 열리는 제4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관련 소식을 듣고 얼핏 떠오른 생각이다.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1970년대 전국소년체전은 꽤 큰 규모의 스포츠 행사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번 대회에는 막내인 세종자치시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에서 1만6871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이 숫자에는 4,401명의 초등부 선수와 7,704명의 중등부 선수 그리고 3,822명의 경기 임원, 944명의 본부 임원이 포함돼 있다. 1만2천여명의 어린 선수들이 육상과 수영 축구, 야구, 테니스, 농구, 배구, 탁구, 핸드볼, 유도, 양궁, 체조, 배드민턴, 태권도 등 33개 종목에서 미래의 국가 대표, 스타플레이어를 꿈꾸며 기량을 겨룬다.

조명을 받든 말든 여전히 한국 스포츠의 주춧돌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출범했다. 1960년대 들어 전국체육대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비대해졌고 1971년 제52회 대회부터는 거대 도시인 서울에서조차 대회를 치르기 벅차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회 규모가 커지면 지방 도시에서 열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과연 대회의 비대화가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게 마련이다.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전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국 규모 주니어체육대회의 창설을 1970년도 사업 계획으로 결정했지만 관계 당국의 미온적인 자세로 대회를 열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 무렵 대한체육회는 일본체육협회와 함께 마련한 한일고교환경기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스포츠소년단을 국내에 도입해 전국체육대회의 비대화를 막는 방안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1972년 첫 대회의 정식 명칭이 ‘스포츠소년단 창단 기념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라는 것을 보면 대회의 도입 과정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명칭은 1974년 제3회 대회까지 사용되다 스포츠소년단 창단이 재정 문제 등으로 흐지부지되자 1975년 제4회 대회부터 ‘전국소년체육대회’로 바뀌었다.

아무튼 제1회 전국소년체전은 1972년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이 대회의 가장 큰 화젯거리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초등학교 사치분교 남자 농구부의 선전이었다. 서남해의 외딴 섬 사치도에 있는 이 분교는 전교생이 78명 밖에 되지 않는 미니 학교였지만 결승전에서 서울 계성초등학교에 57-86으로 져 준우승할 때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다. 역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사치분교의 교훈은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사치분교의 이야기는 뒤에 ‘섬 개구리 만세’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 5월 눈물의 준우승 멤버였던 심재균 감독이 목포상고를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대회 남고부 우승으로 이끌면서 다시 한번 ‘섬 개구리 만세’를 불렀다.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낳은 대표적인 선수는 역시 최윤희다. 1976년 6월 서울에서 열린 5회 대회 기록을 살펴보면 뒷날 아시아 최고의 여자 수영 선수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최윤희의 언니 최윤정이 초등부 배영 여자 100m와 200m에서 우승한 게 눈에 띈다. 최윤정-윤희는 자매 수영 선수로 이 무렵부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언니에 이어 최윤희는 1979년 5월 충청북도에서 열린 제8회 대회 초등부 배영 여자 100m에서 1분20초75, 200m에서 2분49초08을 기록하며 2관왕에 올랐다. 자매 모두 서울 은석초등학교에 다닐 때 수영을 배웠다. 언니 최윤정(서울 서울사대부속중)은 이 대회 여중부 배영 100m와 200m에서 각각 1분09초03, 2분28초05로 우승했다.

최윤희는 3년 뒤인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같은 종목에서 각각 1분06초39, 2분 21초9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과 3년 사이에 이룬 놀라운 발전이었다. 최윤희는 개인혼영 200m에서도 1위를 차지해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아시아경기대회 3관왕이 됐다.

최윤희의 뒤를 이은 전국소년체전 스타는 전병관이다. 1983년 5월 전주와 이리, 군산에서 분산 개최된 제12회 대회 중학부 역도 48kg급에서 우승한 전병관은 곧바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갔고 이후 성장 가도를 달려 1988년 서울 올림픽 52kg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56kg급에서 한국 역도의 숙원이던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몸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꿈나무들의 기량 겨루기로 일관하던 전국소년체전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4년 5월 전주시 등 전라북도 일원에서 열린 제33회 대회 때는 전국 어린이 백일장과 사생 대회가 함께 펼쳐졌다. 전국 1천500여개 초등학교에서 참가한 2천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평소 갈고닦은 글과 그림 솜씨를 마음껏 뽐냈다.

1만6,450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이 대회가 열릴 때 기준 사상 최대 규모를 이룬 제33회 대회에서는 30개 종목의 종목별 최우수선수가 탄생했는데 이들 가운데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400m 금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400m 은메달의 주인공 박태환이 포함돼 있다. 당시 서울 대청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박태환은 자유형 200m와 400m, 계영 400m와 혼계영 400m 등 4개 종목의 우승을 휩쓸어 경영 종목 최우수선수가 됐다.

이 대회에 앞서 2000년 인천에서 열린 제29회 대회 축구 남자 초등부 최우수선수는 2012-13시즌 현재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이다. 11살 축구 꿈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공도 잘 차고 연애도 잘하고 있다.





신명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박태환, 기성용 ⓒ 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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