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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가타부타] '진짜사나이', 이등병에 대한 환상만은 아니다

기사입력 2013.06.03 08:29 / 기사수정 2013.06.03 08:31

김승현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깔때기 이론'이라는 용어가 있다. 깔때기의 형태에서 보듯 다방면으로 폭넓게 이뤄지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한 가지 주제로 집약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떤 대화나 행위를 할 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여성들은 수다를 떨다가도 남자나 남편 얘기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남성도 마찬가지로 결국 여자 얘기를 한다. 또 예비역 남성들은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군대' 얘기로 대동단결을 하곤 한다. 이론이라고 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됐지만 귀납적으로는 충분히 방증할 수 있는 용어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 조직이며 사회에서 누렸던 자유는 통제된다. '다나까', '압존법', '잘 못 들었습니다' 등을 사용하는 특수한 환경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금세 적응한 뒤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大韓) 남아로 성장한다. 동시에 이것은 예비역 남성과 현역 군인의 열띤 이야기 소재로 요긴하게 쓰인다. 그들은 "내가 제일 힘들었어"라며 자존심을 걸고 '100분 토론'을 벌인다.

그만큼 군대는 정말로 힘겨운 곳이며 바깥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야 한다. 여기에 밉상 선임은 "눈 감아봐. 보이지? 그게 네 미래야"라며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철조망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갈 순 없는 노릇이다. 답답하게 보일지 몰라도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전국 팔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자연스레 펼칠 수 있다.

이는 MBC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5일 방송분에서 서경석은 백마부대에서의 마지막 밤을 사수 김철환 일병과 탄약고 경계근무를 섰다. 먼저 김 일병이 "검정고시에 합격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하자 서경석은 "부모님 연세가 많아 많이 아프시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다. 어릴 때부터 제일 안타까웠던 게 바로 그거다. 지금도 가장 큰 바람 중 하나가 화목한 가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이 장면은 기자에게 감명 깊게 다가왔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삶을 이겨내야 하는 군인에게 전우만큼 의지할 상대는 없다. 동고동락하면서 가치관을 공유하고 전우에게 어느새 가슴 속 응어리를 내뱉는다. 특히 야간 불침번이나 탄약고, 위병소 등의 근무를 설 때만큼 진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은 많지 않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근무를 서면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어 사수와 부사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계급을 떠나 사람 냄새나는 선후임을 서로 마주치게 된다. 물론 '근무 중 이상무'의 상태가 전제돼야 한다.

서경석의 돌발 고백은 촬영 카메라가 있어서 행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군대가 선사하는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 자연스레 자신을 훌훌 털고 놓아 버리는 마력에 빠졌다고 해석하고 싶다. 즉 바로 옆에 함께 근무를 서는 전우와 공유하는 시간은 정말 값지다. 이런 소중한 시간에 "너희 누나 몇 살이니?" 등을 남발했던 기자의 그릇된 행실이 정말 후회스럽다.

2일 방송된 '진짜 사나이'에서 폐암 말기의 장준화 상병의 편지 한 통도 눈물을 적셨다. 정성이 담긴 아날로그 감성을 자아내는 손 편지에 안타까운 사연까지 담겨 감동을 안겼다. 또 백마부대 김철환 일병과 샘 해밍턴 어머니의 편지, 그리고 양태승 분대장이 끝내 터뜨린 눈물은 군대가 아니라면 볼 수 없기에 더욱 애틋했다. 겉으로는 강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누구보다 부드럽다.

얼마 전 '진짜사나이' 기사와 관련해 흥미로운 댓글을 봤다. "입대 앞둔 남성들에게 이등병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며 "병영캠프 같다"는 내용이었다. 지당한 의견이다. '진짜 사나이'에서는 이등병인 연예인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현실과 분명 차이가 있다. 선임들의 존재를 간과한 듯한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다. '진짜사나이'가 리얼이라 하더라도 여기서 예능이란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비아냥보다는 연예인들의 부대 적응기를 보면서 현역 군인이 통제된 생활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또 군인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남성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이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기자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다.)

아울러 '진짜사나이'는 나라를 위해 애쓰는 군인들의 애환을 환기한다. 두 발 뻗고 편히 자는 우리의 생활 뒤에는 이들의 노고가 있다. 상시 전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준비태세 사이렌이 울리면 군인들이 기피한다는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대우를 받아야 할 군인이 존중받고 있지 못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냄새가 난다는 둥, 소위 '군바리'라며 격하시키는 둥 이런 세태가 간간이 포착돼 안타깝다. 병역을 자랑스러워하고 존중하는 인식의 전환이 자리 잡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랑스러운 예비역 병장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군 생활 제일 힘들게 했다"며 순위를 정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밉상스럽겠지만, 기자는 이들이 결코 밉지 않다. 군필자들은 누구나 각자 '가장 힘든' 군인시절을 통과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기자는 말년 휴가 나가기 전날 부대에 사단장이 방문했다. 고로 내가 제일 힘들었다!)

그렇다고 병역의무가 면제된 여성들이나, 이런저런 사유로 군대에 가지못한 군미필자들보다 군필자들이 '진짜'라는 뜻은 아니다. 청춘의 한 시기를 병영이라는 기묘한 집단 문화 속에서 보내야 했던 이들이 그 때를 되돌아보면서 하게 되는 '회고담'에는 그 시기를 견뎌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 중에는 군대 특유의 폭력문화나 억압적인 군사문화를 미화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MBC '일밤-진짜사나이'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을 배제하면서 우리가 병영문화에서 건져낼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예능으로 잘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그저 '이등병에 대한 환상'이기만 할까.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 진짜사나이 ⓒ MBC 방송화면]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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