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박스, 엄흥도. 엑스포츠뉴스DB 엄홍길.
(엑스포츠뉴스 이예진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실제 역사 속 인물 엄흥도의 이야기가 다시 조명되며 그의 후손 산악인 엄홍길까지 이어지는 가문의 서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9일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월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6일부터 8일까지 172만5767명을 모으며 누적 관객 수 1150만3745명을 기록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2024년 '범죄도시4'의 최종 관객 수 1150만2928명을 넘어 역대 박스오피스 20위에 안착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과 맞물려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극 중 핵심 인물인 엄흥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나아가 그의 후손으로 알려진 산악인 엄홍길까지 다시 언급되며 이목을 끌고 있다.
조선 세조 시기,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당시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엄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강가에 버려진 왕의 시신 앞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움직였다.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였다. 그는 세 아들과 함께 직접 관을 만들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해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
실제로 엄흥도 일가는 이후 세조의 눈을 피해 족보를 없애고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등 가문 전체가 사라질 각오까지 해야 했다.
이후 약 500년이 흐른 뒤, 놀라운 연결고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엄흥도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다.
엄홍길은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특히 2004년 에베레스트에서 후배 대원 3명이 사망했을 당시, 그는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섰다.
당시 시신은 해발 8750m 지점에 방치된 상태였다. 극한의 위험 때문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엄홍길은 직접 원정대를 꾸려 다시 산에 올랐다. 무려 77일간의 사투 끝에 후배의 시신을 찾아 양지바른 곳에 돌무덤을 쌓아 안치하고 내려왔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례는 세계 등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후 엄홍길은 "일 년동안 얼어 매달려 있는 시신을 뜯어내어 운구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모두의 안전을 위해 결국 수습을 포기했다. '에베레스트 신이 여기까지만 허락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다른 두 명의 대원들과 함께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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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500년 전에는 왕의 시신을 거두고, 500년 뒤에는 동료의 시신을 거두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엄흥도의 후손 가운데는 독립운동가도 있다. 직계 후손인 엄항섭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보좌하며 항일 투쟁에 참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가문의 충의와 책임감이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의미를 더한다.
이 사연이 온라인에서 재조명되자 네티즌들은 "DNA는 시대를 초월하는 것 같다",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건 가문", "그래서 집안을 본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역사 속 충신과 현대의 산악인이 하나의 가계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왕과 사는 남자'가 남긴 여운 또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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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기자 leeyj012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