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목동, 김현기 기자) 악전고투 끝에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2위로 마친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연기 뒤 고개를 여기 저기 돌리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전했다.
기쁨도 슬픔도 아니었다. 힘들게 준비한 대회가 끝나 그저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차준환은 실제 공식 인터뷰에서 그런 마음을 입으로 표현했다. 수 년간 부츠 문제로 고생을 많이 한 것은 맞지만 올해 만큼 힘든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츠가 맞지 않다보니 지난가을 치른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와 챌린저 대회에서도 성적이 상당히 나빴다. 지난달 그랑프리 4차 일본 대회(NHK배)에선 프리스케이팅 점프 7개 중 제대로 뛴 게 단 하나에 불과할 정도였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뒤 "장비 문제가 가장 컸다. 지난 10월 초부터 지속됐는데 그랑프리 앞두고도 계속 문제점을 찾아내고 방안을 마련해보고자 했으나 이번 대회까지 뭔가 유의미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며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까지 좀 남았으니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해보겠다. 해결을 해서 두 번째 경기 땐 자신감 갖는 경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차준환은 30일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5 KB금융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랭킹 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84.93점, 예술점수(PCS) 87.88점을 얻어 합계 172.81점을 찍고 프리스케이팅 2위에 올랐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첫 점프를 2회전 뛰어 규정에 따라 0점 받는 어려움 끝에 82.91점으로 3위에 그친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에선 클린에 가까운 연기를 완성한 끝에 쇼트프로그램 점수 합쳐 총점 255.72점을 기록하고 순위를 한 칸 끌어올렸다. 총점 262.84점을 받아 서민규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2차 선발전은 내년 1월 예정된 제80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종합선수권)로, 대한빙상경기연맹은 1차와 2차 선발전 성적을 합산해 동계올림픽 남녀 싱글 종목에 출전할 선수를 확정한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어린 여자 선수들이 도핑테스트에 적발되는 등 문제가 생기자 ISU는 같은 해 시니어 대회 출전 연령을 기존 15살에서 17살로 두 살 높인 상태다.
이에 따라 이번 시즌엔 2008년 6월30일까지 태어난 선수들이 시니어 대회 출전이 가능하고 올림픽에도 나설 수 있다. 차준환과 이번 대회 4위를 차지한 김현겸은 내년 동계올림픽 출전이 가능하지만 1위 서민규와 3위 최하빈은 불가능하다.
차준환 입장에선 올림픽 출전 연령대 선수 중 1위를 차지하며 2018 평창 대회, 2022 베이징 대회에 이어 한국 남자 싱글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에 청신호를 밝혔다.
이번 시즌 프리스케이팅 주제곡 영화 물랑루즈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그는 첫 점프인 고난도 4회전 살코 단독 점프(기본점수 9.70)를 안정적으로 해내며 GOE 2.63점을 더했다.
이어지는 트리플 악셀 단독 점프(기본점수 8.00)와 트리플 러츠-싱글 오일러-트리플 살코(기본점수 10.70) 콤비네이션 점프, 트리플 루프(기본점수 4.90) 단독 점프도 훌륭하게 해내면서 GOE 가산점을 차곡차곡 쌓았다.
플라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에서 회전수 부족, 마지막 점프인 트리플 플립 단독 점프(기본점수)에서 쿼터랜딩(회전수 ¼수준 부족) 판정을 받아 GOE가 깎였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관중석 곳곳에 진을 친 차준환 팬들도 연기 직후 일제히 박수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차준환 연기가 괜찮았다는 반응을 전했다.
차준환은 2022 베이징 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5위에 올라 한국 선수 이 종목 최고 순위 기록을 깨트렸으며, 2023년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2023 ISU 피겨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선 은메달을 따내 한국 피겨 최초로 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2025 동계아시안게임에선 일본의 에이스 가기야마 유마를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다만 이번 대회에선 부츠 문제가 불거지며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8위와 5위에 그쳤다.
차준환은 랭킹 대회 프리스케이팅 직후 올림픽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부츠 등 장비 문제를 기필코 해결한 뒤 밀라노에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울러 1월 종합선수권이 끝나면 같은 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4대륙선수권대회 출전해 올림픽 리허설 삼을 뜻을 내비쳤다.
다음은 차준환과의 일문일답.
-대회 마친 소감은.
▲개인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경기였던 것 같다. 뭔가 쉽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임했는데 물론 어제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실수가 나왔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선 구성을 너무 많이 낮출 수밖에 없던 상황인지라 낮추긴 했다.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어쨌든 이번 경기는 서울시청 소속으로 뛴 첫 국내 경기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뜻깊었던 경기가 됐다. 2차 선발전을 다시 한 번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 같다.
-대회 앞두고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리스크(위험)는 장비 문제가 가장 컸던 것 같다. 10월 초부터 지속이 됐는데 그랑프리 앞두고도 계속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어떻게든 개선 방안을 마련해보려고 했으나 이번 경기까지 뭔가 유의미한 해결책 등을 찾지 못했다. 경기가 계속 붙어 있다보니 비슷했는데 이제 2차 선발전까지 (한 달 이상)시간이 남았으니 다시 해 볼 생각이다.
-어느 정도 맞는 것을 찾았나. 아니면 계속 찾아봐야 하나.
▲내가 시즌을 열심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너무 아쉽다.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에 힘입어서 다시 기운을 내서 잘 준비해보고 싶다.
-작년 겨울부터 아팠던 발목은 어떤가.
▲이번 경기 준비하면서 발목 상태도 조금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지속적인 스케이트 부츠 교체도 있지 않았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까지 좀 남았으니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해보겠다. 해결을 해서 두 번째 경기 땐 자신감 갖는 경기를 해보고 싶다
-4대륙선수권은 뛰게 되나.
▲뛸 것 같다. 올림픽이 2월에 열리는데 그 전에 한 번 경험해 볼 수 있는 메이저 국제대회다.
-프리스케이팅 연기 직후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장비 문제로 많이 지쳤던 것 같다. NHK배 이후에 한 2주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만한 훈련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훈련보다는 계속 장비를 찾고 거기에 계속 적응하는 과정에 내가 많이 타격을 받았던 것 같다. 좀 버겁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좀 힘듦이 있었는데 나도 어제 오늘 어떻게 경기가 흘러갈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마음 반, 또 막상 경기에 임할 때는 오랜 시간 좀 경기를 뛰어온 선수라 그런지 집중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최선을 다해 집중하려고 했던 마음 반, 또 어떻게든 일단 마무리했다는 그런 마음이 가장 많이 들어서 좀 그랬던 것 같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