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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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영웅, 유상철①] '전무후무' 멀티플레이어

기사입력 2021.06.09 05:00 / 기사수정 2021.06.08 15:13


[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유비' 유상철의 활약은 그라운드 전역, 그리고 그라운드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서 향년 5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 전역을 누빈 그는 이제 하늘에서 더 넓은 곳을 누비게 된다. 

유상철의 선수 시절 그라운드 전역을 누빈 멀티플레이어의 표본이었다. 1994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측면 수비수로 데뷔 시즌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1998년엔 미드필더로,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일레븐에 이름을 올리며 선배 김주성에 이어서 두 번째로 골키퍼 포지션을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베스트 일레븐이 이름을 올린 선수가 됐다. 

유상철의 멀티 플레이 능력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빛을 발했다. 단기전인 만큼 제한된 선수단 내에서 거스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은 유상철의 멀티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한 유상철은 0-1로 뒤진 상황에서 공격수들이 대거 투입되자 중앙 수비수로 자리를 옮겨서 이탈리아의 공격을 막았다. 선제 실점 이후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대표팀은 이후 설기현의 동점 골과 안정환의 골든골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를 비롯해 유상철은 2002 한일 월드컵 전 경기를 소화하면서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선수 시절 만큼 은퇴 후에 유상철의 행보 역시 멀티플레이어였다. 방송과 감독, 해설위원, 그리고 짧지만, 행정가 경력까지 축구계에서 그의 활동 범위는 넓었다. 그는 2006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면서 KBS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날아라 슛돌이' 2기와 3기 감독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강인(발렌시아)과 동료 이을용의 아들 이태석(FC서울)을 지도했다. 

이후 유상철은 춘천기계공고를 거쳐 2011년 대전 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해 첫 프로 감독 경력을 쌓았다. 두 시즌을 맡은 뒤 그는 2014년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3년간 부임했고 이 기간에 2016년부터 JTBC 해설위원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다. 

유상철은 2018년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부임해 프로 무대에 복귀했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중도에 사임했다. 그 후 2019년 2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으로 선임돼 행정가 경력을 쌓기도 했지만 3개월 만인 5월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안타깝게도 유상철은 한국 축구계에 더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한 채 50세라는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sbjhk8031@xportsnews.com / 사진=연합뉴스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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