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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트리오 "서진룸살롱 사건…고금석, 키다리아저씨·사형수" (꼬꼬무) [종합]

기사입력 2020.11.13 00:02 / 기사수정 2020.11.13 00:11

나금주 기자

[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꼬꼬무' 장트리오가 서진룸살롱 사건과 사형수 고금석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1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이 김동현, 한지은, 이준혁에게 서진룸살롱 사건에 관해 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1989년 강원도 정선. 산골 마을의 분교가 있었다. 28명뿐인 학생들은 매달 어떤 아저씨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엔 매번 학용품값 5만 원도 함께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그를 '키다리아저씨'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바다를 보고 싶다고 소원을 적었고, 8월에 해운대로 초대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하지만 그 이후 키다리 아저씨의 편지는 끊겼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삼중스님은 한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 장트리오는 "삼중스님은 사형수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다. 50년 넘게 교도소를 왔다갔다 하시면서 300명이 넘는 사형수의 마지막을 지키셨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삼중스님은 그날을 떠올리며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양주 두 병을 들이켰다. 그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25세 고금석의 사형이 집행된다는 전화였다. 그는 아이들의 바다여행을 잘 보살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키다리아저씨는 어쩌다 사형수가 된 걸까. 장트리오는 "서진 룸살롱 사건 기억하냐"라고 물었다. 1986년 강남 한복판에서 4명이 잔혹하게 살인된 사건으로, 조폭들의 칼부림 사건이었다. 조폭 영화에 칼부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게 이 사건 때문이라고. 

당시 고금석 일행이 서진회관 16호실에서 술을 마셨다. 맞은편 20호실에도 일행이 있었다. 이들은 서울 목포파로, 목포 출신 고향 선후배 사이였다. 장도연은 "경찰 관리대상에도 오르지 않을 정도로 신출내기였다"라고 했다. 그때 서진회관에 7명이 들어왔고, 고금석 일행 옆방인 17호실로 들어가게 됐다. 취한 17호실 손님들은 웨이터에게 4만 원을 주며 위스키 2병을 사오라고 한다. 그들은 웨이터가 오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졌고, 웨이터에게 방을 바꿔 달라고 하다 얼굴을 가격했다.

16호실 고금석 일행도 이를 알게 됐지만, 서울 목포파가 덤비기엔 17호실은 너무 거물이었다. 17호실 손님들의 정체는 맘보파. 장성규는 "김태촌의 범서방파 방계조직 중 하나였다"라고 밝혔다. 화장실에 갔던 고금석과 조직원은 맘보파와 마주쳤다. 조직원은 같은 목포 출신이었던 맘보파와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고금석이 최두석한테 인사를 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장트리오는 "맘보파 입장에선 여유로웠다. 서울 목포파를 조직이라도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목 장씨는 일본 사무라이 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전국 조폭계를 정화한다는 목표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장도연은 "합숙하고 지옥훈련을 한다. 해남으로 전지훈련까지 갔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맘보파, 서울 목포파의 대치 상황. 장트리오는 "서울 목포파 행동대장이 발목에 있던 칼을 꺼냈다. 맘보파는 빈손이었다"라고 했다. 이준혁이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하자 장항준은 "근데 최두석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라고 밝혔다.

장항준은 "맨 앞에서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던 게 고금석이었다. 훗날 법정에서 '피를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멈출 수가 없었다'라고 한다. 장성규는 "고금석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주변 지인들은 믿지를 않았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장도연은 고금석 어린 시절에 관해 "아버지는 섬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선생님이었고, 어머니도 고금석을 사랑으로 키웠다. 고금석은 돈을 벌면 어머니에게 자가용을 사드려야겠단 꿈이 있었다. 서울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들락날락거리던 고향 선후배 중에 두목 장 씨가 있었다. 고금석은 장 씨의 권유로 나이트클럽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잘못된 길을 들어서게 됐다. 검거된 두목 장 씨와 행동대장의 뻔뻔한 인터뷰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다.


사형을 선고받은 고금석은 불교에 귀의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을 했다고. 고금석의 옥중 편지 원본을 공개했다. 장성규는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냐. 근데 깨달은 이 사람의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뭉클하다"라고 했다. 김동현은 "자기를 위한 행동으로도 느껴진다. 너무 죄책감이 커서 줄이려고 하는 건데 솔직히 바보 같다. 이렇게까지 후회할 사람이면 왜 그 순간에 컨트롤이 안 됐을까. 마냥 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고금석의 첫사랑 윤 씨는 고금석을 매일 면회를 왔다고. 윤 씨는 고금석이 죽기 전 옥중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한지은은 "이거 실화 맞지"라며 놀랐다. 고금석은 그 후로 면회를 거절했지만, 윤 씨는 계속 찾아갔다. 윤 씨는 어김없이 면회를 갔지만, 고금석이 사형집행당한 날이었다. 장도연은 "윤 씨는 펑펑 울었고, 교도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그러지 말았어야지"라고 했다.

이후 산골 분교 아이들은 삼중스님과 윤 씨와 함께 바다에 갔다. 아이들은 그 후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고, 한지은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 후 산골 분교에 야외 교실이 지어졌다. 장항준은 "고금석이 죽기 전 영치금을 모아서 지어준 거다. 교실 이름은 고금석의 법명 '금송'을 딴 금송정이었다"라고 했다. 삼중스님은 "사형이란 죄목에 대해선 억울하니 하는 얘기를 할 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거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떠날 때 보면 안다"라고 밝혔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 = SBS 방송화면

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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