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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실패했다 - 롯데자이언츠 편

기사입력 2005.10.03 17:20 / 기사수정 2005.10.03 17:20

이석재 기자

"가을에도 야구하자",  "이래가꼬 가을에 야구하것나"

올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희망과 좌절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일 것이다. 2004 시즌까지 무려 4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롯데와 구도 부산 롯데 팬들의 화두는 "과연 롯데가 가을에도 야구할 수 있는가"였다. 상위권 전력의 팀들이나 그 팬들의 입장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은 그다지 높은 기대치는 아니겠지만 롯데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마다 "復活 롯데"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며 롯데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약속하는 양상문 감독의 각오는 비장했으나 그들은 올해도 가을잔치 초대장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달라진 롯데, 시범경기 수위를 차지하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에게 롯데는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팀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1년전, FA 선수였던 정수근과 이상목을 영입하면서 전문가들은 롯데를 다크호스로 평가했지만 늘 그렇듯 최하위를 차지하면서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든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범경기가 시작되자 거인들은 눈빛 하나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뒤지고 있는 경기 막판에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 아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시범경기 1위를 차지하면서 예년같이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하지만 시범경기는 시범일 뿐이었을까.

삼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4월 2일 개막전, 예년과 같으면 롯데는 4위인 기아와 광주에서 개막전을 치렀어야 했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KBO는 올시즌에는 전년도 순위가 아닌 지역 라이벌 구도로 개막전 파트너를 정하기로 했고 롯데의 개막전 파트너는 심정수에 박진만까지 영입해 전력이 막강해진 삼성으로 바뀌었다.

2004 시즌에도 롯데는 삼성에게 2승만을 거두고 무려 16승을 헌납한 바 있는 말 그대로 삼성의 보약이었는데 양상문 감독은 개막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기대한 손민한 - 배영수의 에이스 맞대결이 아닌 염종석 선발 카드를 꺼냈다. 팀의 에이스인 손민한은 사직 홈경기에 등판시키겠다는 구실이었지만 결국 이는 '공삼증(恐三症)'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개막전에서 롯데는 배영수의 공을 한번도 시원하게 쳐내지 못하고 완봉패를 당했고 이튿날도 선발 장원준이 초반에 무너지며 대패를 당하면서 개막 2연전을 모두 내주고 말았다. 

2005 시즌 최종 삼성과의 맞대결 성적이 4승 14패가 되면서 롯데의 가을잔치 꿈을 날려버리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는데 개막전부터 정면대결이 아닌 우회전술을 쓰다 실패한 양상문 감독의 자충수가 결국 롯데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된 것이었다.

신문지 물결.... 돌아온 사직의 봄

개막전은 허망한 2연패로 끝나버렸지만 롯데에게는 에이스 손민한이 있었다. 개막전 2연패에도 불구하고 사직 롯데 개막전에는 만원 관중이 운집했고 손민한은 지난 시즌 우승 팀이었던 현대를 가볍게 제압하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손민한은 이후에도 팀이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등장해 연패를 끊어주거나 팀의 연승을 이어주는 에이스 노릇을 도맡아하며 롯데 선수로는 유일하게 다승과 방어율 1위를 동시에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마운드에 손민한이 있었다면 타선에서는 팀의 중심타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대로(라이온 - 이대호 - 펠로우) 트리오가 있었다. 지난 시즌부터 팀의 3번타자로 활약한 라이온은 어느 정도 활약이 예상되었지만 페레즈의 퇴출 이후 대체 용병으로 영입한 펠로우는 상대 마운드가 파악하기 이전에 놀라운 홈런 페이스를 보이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안타수보다 더 많은 타점수를 기록하며 경이적인 타점 페이스를 보인 이대호가 팀 4번 타자로 굳건히 서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5월 13일 사직 대 두산 전, 사직구장은 평일임에도 만원 관중을 기록하는 대단한 야구 열기를 보였는데 평일 만원 관중은 1995년 이후 무려 10년만의 대기록이었다.  이후 두 경기에서도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롯데 팬들은 돌아온 사직의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Again 5.26.... 거인이여 부활하라
 
5월 26일 잠실 대  LG전. 롯데의 선발 장원준이 초반에 난타를 당하며 4회말이 끝난 상황에서 스코어는 8-0으로 LG의 리드. 이 상황에서 롯데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루측 롯데 관중석에서는 그저 응원이나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부산갈매기'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5회초 롯데는 무려 안타 9개에 볼넷 1개를 집중시키며 스코어 8-8,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3루측 롯데 응원단은 난리가 났다.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문구가 선명한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이후 3실점을 하면서 패색이 짙어지기는 했지만 팬들로써는 아쉬움이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8회와 9회에 각각 1점과 2점을 만회하며 또다시 동점을 이룬 9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등장한 포철공고 포수 출신 최준석. 과체중 때문에 포수 수비가 어려워 지명타자로 출장한 그는 왠만해선 밀어서 넘길 수 없다는 잠실구장 우측 펜스를 밀어쳐서 넘겨버리는 괴력을 과시하며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스코어는 13-11, 롯데 팬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며 '승리의 롯데'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다. 
  
죽음의 9연전, 눈물의 9연전

올시즌에는 현충일과 광복절이 월요일인 관계로 6월과 8월에 두 번의 9연전이 편성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8개 구단 중 이동거리가 가장 긴 롯데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리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는 우선적으로 배려해주어야 하는 롯데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오히려 더 불리한 경기일정을 내놓았다.

롯데는 6월 9연전에서 수원 - 사직 - 문학을 이동했고,  8월 9연전에서는 대구 - 문학 - 사직을 이동했다. 이동일이 없음에도 매번 400km 이상을 이동하는 바람에 롯데 선수들은 새벽이 되어야 해당 지역에 도착해 새벽잠을 자고 경기장에 나설수 밖에 없었다. 

같은 기간 한화의 경우 6월 9연전은 청주 - 사직 - 대전을 이동했고,  8월 9연전은 수원 - 대전 - 잠실을 이동했다. 불과 200km 정도의 거리였고 6월 9연전에는 홈경기를 두 차례나 배정하는 친절을 보였다. 

그 결과였을까 롯데는 두 번의 9연전에서 14패를 기록했고, 한화는 두 번의 9연전에서 14승을 기록하며 롯데와 한화는 팀순위마저 뒤바뀌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절망 끝에 보이는 희망 한 자락

이번에 연재되는 칼럼의 네 팀들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네 팀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실패했다'는 범주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올 시즌 롯데에게 그저 실패했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마운드의 신, 구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한민국 에이스로 우뚝 선 손민한에다가 팀의 맏형 염종석, 올시즌 혜성같이 등장했던 이용훈, FA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한 이상목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차세대 좌완 에이스로 등장한 장원준, 중간 에이스로 임경완의 공백을 120% 이상 메운 이왕기, 야구 월드컵에서 일본 격파의 선봉장이 된 최대성, 2년간의 어깨 부상을 털고 일어선 김수화가 롯데의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

마운드의 안정감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타선에서도 롯데 타선의 핵으로 떠오른 이대호에다가 올시즌 타격에도 눈을 뜨며 공, 수의 조화를 이룬 박기혁 등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사직 관중 몰이에 한몫하는 정수근, 재간둥이 신인 내야수 이원석, 거칠지만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돋보이는 최준석 등도 롯데의 부활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그래도 롯데가 과연.... 

이렇듯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롯데이기는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펠로우와 라이온의 퇴출로 새롭게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야 하고 이대호와 두 외국인 타자가 지키고 있는 중심 타선은 장타력은 돋보이나 정확성이 떨어지며 상대 투수들에게 주는 위압감이 반감되는 모습이었다. 

신인 드래프트에 있어 롯데는 1차로 부산고 유격수 출신 손용석을 지명하면서 내야를 강화하는 모습이었는데 박기혁과의 경쟁보다는 타격에서 헛점을 보이는 2루수 신명철과의 경쟁 또는 내야의 멀티 백업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2차 1번인 광주일고 에이스 출신 나승현과 2번 덕수정보고 4번타자 김문호는 투타에 활력을 불어넣을 신인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롯데가 강팀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전력을 얼마만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가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 롯데는 현 양상문 감독 체제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와 새로운 감독을 영입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이 결정은 가능한 한 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올시즌 롯데의 선전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300만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을 만큼 롯데의 활약은 프로야구 흥행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부활하는 롯데를 기대하는 것은 비단 롯데 팬만이 아님을 롯데 자이언츠 구단과 선수들은 다시 한 번 각인해야 할 것이다.



이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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