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솔직히 '김보름 청원' 추천인 수 60만명이 말이 되는 건가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이 61만명이던데…김보름 선수가 흉악범도 아니고, 그냥 좀 반성하면 되는 거지. 청와대 청원까지 가다니 사람들 좀 '오버'한다고 느꼈네요."
8년 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때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스피드스케이팅 '왕따 주행 논란' 때 한 네티즌이 쓴 글이다.
그가 말한 '김보름 청원'이란 2018년 2월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보름, 박XX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뜻한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선 김보름이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연말인 지난해 12월30일 SNS를 통해 "11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해 2010~2024년 국가대표로 얼음 위에 서며 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며 "올해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 시절 얼음 위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날부터 스케이트는 제 삶의 전부였다. 어설프게 균형을 잡던 아이는 꿈을 품었고, 그 꿈을 따라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며 "그 길 위에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이라는 값진 무대와 소중한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자신의 선수 생활을 회상했다.
평창 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였던 김보름은 5000만 국민이 모두 알고 있을 법한 여자 팀추월 종목에서의 '왕따 주행 논란' 가해자로 오해 받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올림픽, 그 것도 홈에서 열린 올림픽 때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경기 준비할 시간에 인터뷰 장에 나와 해명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멘털이 무너진 것은 아니어서 대회 막판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생애 처음이자 유일한 올림픽 메달인 은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기뻐할 수 없었다. 태극기를 흔드는 것조차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태극기를 내려놓고 큰 절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이후 김보름은 소송 끝에 일부 승소하며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노선영이 평창 올림픽 뒤 인터뷰에서 "김보름이 따로 훈련하는 등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김보름이 노선영을 따돌렸다는 '왕따 주행'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김보름은 노선영이 허위 주장을 했다며 2020년 11월 그를 상대로 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의 화해 권고 속에서도 둘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법원은 결국 항소심에서 '노선영이 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후 양 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해당 판결이 확정됐고 김보름은 법적으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 관심도 없었고, 당시 돌팔매질하던 이들 중 제대로 사과하는 경우도 거의 보이질 않았다.
김보름은 정신과 치료를 다니고, 선수 생활 도중 팀추월 트라우마까지 호소했지만 그를 욕하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한 표정이었다.
이후 김보름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중장거리 에이스로 계속 링크 위를 질주했고 2022 베이징 올림픽 매스스타트에도 나서 5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 여자 빙송 중장거리 역사에서 최고의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30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광기가 느껴질 정도의 혹독한 비판을 하던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2막을 열어나가기로 했다.
김보름은 은퇴사에서 "그 여정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기쁨의 순간도 있었지만,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시간들 또한 지나왔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버거웠던 날들도 있었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며 8년 전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을 쓰고는 "그럼에도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스케이트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칭친했다.
그는 끝으로 "선수 생활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스케이트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다"는 김보름은 "많은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조금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지금도 김보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순간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용기 불어넣은 이들부터 기억하고 챙기며 인생 새 출발선에 섰음을 알렸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 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