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0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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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행운 사이' 달콤한 그 이름, 사이클링 히트 [XP 인사이드]

기사입력 2016.04.19 07:33 / 기사수정 2016.04.19 09:45

나유리 기자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한명의 타자가 한경기에서 1루타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치는 것. 늘 뜻밖의 행운처럼 찾아오는 기록 '사이클링 히트.'

35년 역사의 한국프로야구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타자는 17명 뿐이다. 1982년 6월 12일 삼성 오대석이 삼미전에서 KBO리그 최초의 '사이클링 히터'가 됐다. 그리고 2001년 5월 26일 삼성 마르티네스가 외국인 선수로는 역대 처음(통산 9호)으로 사이클링 히트(해태전)를 기록했고, 한화 신종길은 2004년 9월 21일 두산전에서 역대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NC 에릭 테임즈가 외국인 선수 두번째, 역대 최초 한 시즌 두번의 사이클링 히트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가장 최근 '사이클링 히터'는 KIA의 김주찬이다. 김주찬은 지난 15일 광주 넥센전에서 홈런-1루타-3루타-2루타를 고루 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게 된다. KBO리그 통산 19번째 기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타이거즈 구단 역사를 통틀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타자가 김주찬 뿐이라는 것이다. 해태와 KIA를 거치는 동안 타이거즈에는 김성한, 이순철, 이종범, 장성호 같은 대단한 타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이클링 히트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실력과 행운 사이, 그 습자지처럼 얇은 차이 때문이었다. 



프로 통산 1252개의 안타를 치고, 145개의 홈런, 371개의 도루를 기록한 '해태 레전드' 중 한명인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현역 시절을 떠올리며 "매번 꼭 하나씩 모자라서 사이클링 히트에 실패했었다"고 뒤돌아봤다. 이 위원은 "여러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나머지를 다 쳤는데 3루타를 못친다거나, 홈런과 3루타도 쳤는데 단타를 못쳐서 실패한 경우도 많았었다"며 웃었다.

그만큼 쉽게 잡히지 않는 기록이다. 또 분위기가 조성되면 마지막 타석에서 기록이 의식돼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이순철 위원은 "아무래도 기록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료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부진해서 안타 하나만 남겨두고 내 타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운도 좋아야하고 발도 빨라야한다. 홈런도 어려운데 3루타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사이클링 히트는 굉장히 귀한 기록이다. 역대 8호 양준혁(1996년 8월 23일 현대전)의 기록과 9호 마르티네스의 기록까지 약 5년이 걸렸다. 그리고 14호 이종욱(2009년 4월 11일 LG전)과 15호 이병규(2013년 7월 5일)까지 약 4년이 걸렸다. 하지만 2014년 16호 오재원(5월 23일 한화전) 이후 테임즈와 김주찬까지 매년 사이클링 히터들이 나오고 있다. 

이순철 위원은 "예전보다 경기수가 늘어났고, 리그 전반적으로 타고투저 현상이 지속되다보니 기록을 더 자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회가 많아졌다. 서건창의 201안타는 한 시즌 내내 페이스를 유지해야하니까 경기수가 늘어나도 깨기 힘들다. 하지만 사이클링 히트는 한 시즌에도 여러 선수가 달성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안치용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도 현역 시절 이 '행운'을 누린 주인공이었다. 안 위원은 LG 소속이었던 2008년 6월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었다. 

안치용 위원은 오히려 기록을 달성한날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었다"고 회상했다. "전날(17일) 룸메이트였던 (조)인성이형이 2군에 가게 돼서 가볍게 술을 한잔 했는데 원래 술을 못마시는 체질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늘 경기가 조금 힘들겠다"는게 그날의 기억이다. 

하지만 김재박 당시 LG 감독의 음력 생일이었고, LG가 9연패에 빠져있었던 그날 '난세의 영웅' 안치용이 대기록으로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안치용 위원은 "마지막 3루타만 남겨뒀을때 솔직히 욕심이 났다. 마지막 타구가 좌중간으로 뻗어가는데 '무조건 3루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19-1로 크게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뛰어볼만 했다. 그때 대구구장이 인조 잔디였는데, 타구가 잔디를 맞고 튀어서 펜스로 넘어갔다면 인정 2루타가 될 뻔했다. 다행히도 그라운드 안에 떨어지면서 뛸 수 있었다"며 현역 시절 가장 잊혀지지 않는 그날을 떠올렸다. 

"역대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타자들 중에 프로 통산 기록으로 보면 내 기록이 가장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안 위원은 "하지만 그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사이클링 히트는 실력을 전제로 한 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김주찬의 대기록을 장식한 마지막 타석 2루타도 만약 넥센 3루수 장시윤의 글러브를 맞고 뒤로 흐르면서 타구가 느려지지 않았다면, 2루에서 쉽게 세이프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운이 따랐고, 김주찬은 그 행운을 거머쥐었다. 

실력과 행운 사이에 있는 달콤한 이름 '사이클링 히트.' 선수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절대적 기준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선수와 팬 모두에게 최고의 날을 만들어주는 선물임에는 틀림 없다.

NYR@xportsnews.com/사진 ⓒ KIA 타이거즈,엑스포츠뉴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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