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1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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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 모닝와이드] 한국남자배구가 일본보다 자랑스러운 이유

기사입력 2008.07.21 10:02 / 기사수정 2008.07.21 10:02

조영준 기자

Monday Sports Essay - 한국남자배구가 일본보다 자랑스러운 이유들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시간으로 지난 19일 저녁에 펼쳐진 2008 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 B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11전 전패를 기록 중이던 대한민국 팀이 세계랭킹 2위이자 10승 1패로 B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러시아를 3-2로 누르며 목말랐던 1승을 건졌습니다.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빼앗기고 월드리그에서 전패를 당할 수 있는 막바지 고비에서 회생한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은 주포인 문성민(경기대)과 4세트와 5세트에서 귀중한 활약을 해준 김요한(LIG 손해보험)의 활약을 앞세워 내리 3세트를 따냈습니다.

남자대표팀이 베이징올림픽예선전에서 탈락한 이후로 팀의 기본적인 틀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은 노련한 이경수(LIG 손해보험)와 후인정(현대캐피탈)대신 젊은 선수들로 새롭게 개편되었고 새로운 사령탑이 없어서 이탈리아와의 홈 4차전까지는 서남원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막 부임한 신치용 감독이 대표팀을 새롭게 다듬을 기회는 당연히 없었고 노장세터 최태웅을 위시한 젊은 선수들의 분전으로 세계적인 강호인 이탈리아, 쿠바 등과 대등한 경기력을 펼쳤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매번 근소하게 패배했습니다.

한국이 속한 B조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였습니다. 브라질과 함께 세계배구 최강의 자리를 다투고 있는 국가인 러시아를 비롯해, 세리에 A리그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와 전통적으로 한국에 강세를 보인 '카리브 해의 갈색군단' 쿠바가 속한 B조에서 한국이 제대로 이길만한 팀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한 상대에게 10번이기는 것보다 강한 상대와 다퉈서 20번 패배하는 것이 훨씬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2002년 한국축구대표팀을 4강에 안착시킨 거스 히딩크(현 러시아국가대표 감독)도 동남아국가들에 계속 승리하는 경기를 펼치는 것보다 유럽의 강호와 맞서서 패하는 것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월드리그 조 편성 중, B조가 가장 강한 팀들이 몰린 조였습니다. 러시아가 일취월장한 기량을 가졌고 여기에 근접한 전력을 가진 팀이 이탈리아와 쿠바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B조에 속한 한국은 다른 팀들로부터 ‘1승 재물’이 될 최적의 팀이었습니다.

모든 팀들은 한국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수를 추가하기 위해 전력을 퍼부었습니다. 팀의 사령탑이 중간에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 대표선수들은 기죽지 않은 파이팅을 보이며 경기에 임했습니다.

비록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연패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펼쳐나가며 팀의 조직력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도 매 경기 패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향상되는 자신들의 기량에 만족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스포츠에서 지는 것은 참기 어려운 점이지만 강한 상대를 만나서 대등한 경기력을 펼쳤던 부분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러 넣어줬습니다.

그리고 전패로 끝나리라 예상했던 러시아와의 원정 2차전에서 한국 팀은 막바지 투혼을 발휘하며 3-2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구어냈습니다. 한국은 1999년 월드컵대회 이후로 9년 만에 러시아를 꺾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한국팀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동안, 많은 배구 팬들의 실망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여자배구 못지않게 남자배구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 아니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강한 상대에게 도전하는 모험을 점점 즐겨갔던 한국 팀은 대등한 경기력을 펼쳐 팬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9일, 그토록 염원한 '1승'을 따냈습니다.

지금은 김세진과 신진식(이상 삼성화재)등의 특급 공격수들이 활약한 배구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문성민을 필두로 점점 성장해가는 남자배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세계의 강호들과 비교해 높이와 힘에서 밀리는 한국은 그들보다 뛰어난 '기본기'가 필요하다고 신치용 감독이 밝혔습니다.

문성민과 김요한, 그리고 신영수(대한항공) 같은 선수들이 지금보다 철저한 기본기를 완성하게 된다면 현재의 대표팀이 가진 기량은 지금보다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이 이렇게 험난한 길을 택하였지만, 일본남자배구대표팀은 '초청 팀 자격 와일드카드'란 특혜를 받아가며 본선 6강 리그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종목들에서 조별리그가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조의 1, 2위 팀이 본선에 진출하며 와일드카드는 상식적으로 조 2위 팀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그리고 올림픽예선전과 같은 국제대회를 개최해온 일본은 FIVB(국제배구연맹)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국가입니다. 또한, 현 FIVB의 아스코타 회장은 유명한 친일파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놓인 아스코타 회장은 작별 선물로 일본에게 ‘월드리그 본선 와일드카드’를 선사했습니다.

강팀들이 즐비하게 몰려있는 한국에 비해 일본은 가장 수월한 조 편성을 얻었습니다. 폴란드, 중국, 이집트등과 함께 D조에 속한 일본은 최종성적 5승 7패를 기록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인 '와일드카드'의 특혜를 얻었습니다.

물론 일본배구가 한국배구에 비해 부러운 점은 전 국민의 배구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과 선수들의 저변, 그리고 국제대회를 준비해나가는 치밀하고 장기적인 기획력이 한국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시합을 한 한국대표팀은 협회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외교의 힘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본배구협회는 자국의 남녀대표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장기적인 지원과 100개가 넘는 국제대회 전술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지난 올림픽예선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패했던 이유는 바로 정보력의 준비와 전략적인 부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감독의 용병술에만 의존해 팀의 경기력을 향상시켜 나가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세 명 이상의 전력분석관들이 실시간으로 상대팀의 경기력을 모니터해가며 감독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 국제배구의 경향입니다.

그러나 한국남자배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한동안 배구 일선에서 물러났었고 검증도 되지 않은 류중탁 전 국가대표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했습니다.

한국의 주포 문성민은 284점으로 득점 부분 1위를 차지했고 25개의 서브에이스를 성공시켜 이 부분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적인 공격수로 부상되고 있는 문성민은 일본의 에이스인 이시지마 '고츠' 유스케와 코사카와 유, 그리고 쿠니히로 시미즈보다 한층 위력적인 공격수입니다.

비록 12번의 경기 중에 1승만 거두었지만 일본이 상대한 다소 약했던 상대들에 비해 훨씬 강했던 팀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준 한국선수권이 훨씬 자랑스럽게 보입니다. 김호철(현대캐피탈)감독이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은 2006년에는 월드리그와 세계선수권에서 지속적으로 패하며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세계의 강호들에게 연속적으로 패하면서 얻은 교훈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패기가 빛을 발한 러시아와의 마지막 경기를 떠올리면, 비교적 약한 팀들을 상대로 경기하다가 '초청 팀 와일드카드'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특혜를 입으며 본선에 오른 일본보다 한국팀이 훨씬 정직했었고 인상적인 팀으로 여겨집니다.

치밀한 외교력과 재력으로 미덥지 못한 먹이를 덥석 무는 것보다 강한 상대들과 힘겨운 경기를 펼치며 미래를 위해 경기력을 다져나가는 한국팀의 미래는 일본팀에 비해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사진=월드리그에서 활약한 문성민, 여오현 (C)엑스포츠뉴스  김금석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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