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4-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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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학의 Feel통] 조기 종영,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버린 것인가

기사입력 2013.04.24 02:17 / 기사수정 2013.04.30 19:55

이준학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준학 기자] 방송은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전장'에서는 '기다림의 미학' 따위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날그날의 시청률에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야하는 것이 방송 프로그램이 놓인 처지다. 방송사도 매출과 이윤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광고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청률 부진 프로그램을 서둘러 하차시키는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살벌한 '칼질'이 너무 잦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최근 몇 년 사이 '조기 종영'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조기 종영은 말 그대로 지정된 회차나 계획보다 프로그램을 빨리 막내리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의 경우 애초에 기획했던 회차가 있다. 그런데 시청률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조기 종영을,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을 경우 반대로 연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이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예능은 큰 이야기 덩어리를 가지고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이어지는 드라마와는 달리, 매주 혹은 2~3주에 걸쳐 작은 이야기를 가지고 꾸려가게 된다. 그래서 방송을 시작한 지 몇 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을 내릴 경우 조기 종영이나 폐지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조기 종영은 드라마와 예능 뿐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시청자들의 피부에 더욱 와 닿는 드라마와 예능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방송인 강호동의 KBS 복귀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던 '달빛프린스'는 조기 종영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달빛프린스'는 게스트가 한 권의 책을 선정해 다양한 토크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북토크쇼와 버라이어티가 결합된 포맷이었다. 기대와 달리 첫 방송에서 5%대(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한 이후 큰 시청률의 반등 없이 3%대로 8회 만에 조기 종영됐다. 국민MC 강호동도 시청률의 칼바람 앞에서는 2개월의 시간 밖에 허락받지 못했다.

MBC는 지난 1월 시청률 부진을 겪던 '놀러와'를 8년 만에 폐지하고, '토크클럽 배우들'을 편성했다. '토크클럽 배우들'은 황신혜, 심혜진, 예지원, 송선미, 고수희, 신소율 등 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롭게 시도했으나, 역시 낮은 시청률 때문에 8주 만에 총 7회로 끝을 맺었다.

'놀러와'와 '배우들'에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같은 월요일 심야 MBC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MC진이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자막으로 종영으로 알린 것이다.

SBS는 지난해 방송된 주말드라마 '맛있는 인생'을 조기 종영한 바 있다. 당초 50부작으로 기획됐던 '맛있는 인생'은 11부를 덜어낸 39부로 마쳤다. 물론 시청률 부진이 가장 큰 이유였다.

종합편성채널로 넘어가면 사정이 더 심하다. TV조선은 지난해 황정민, 김정은 주연의 드라마 '한반도'를 편성했으나, 0%대의 시청률을 연달아 기록하자 최초 24부에서 6회를 덜어낸 18부로 종영했다. 또 최근엔 같은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하얀 거탑'의 안판석 PD와 배우 윤제문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세계의 끝'을 당초 20부작에서 12부작으로 조기 종영을 결정했으며, 편성 역시 토, 일 방송에서 일요일 방송으로 변경했다.



드라마의 경우 애초 16부작, 24부작 등 정해진 회차가 있다. 이러한 회차를 지키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예의이자 약속이다. 조기 종영은 이 약속을 쉽사리 어기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제작에 참여했던 연기자들이나 스태프들에 대한 배려도 아니다. 서둘러 막을 내리면서 스토리를 왜곡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온전한 감상의 기회를 빼앗는 행위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즐기는 시청자들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는 한국 방송이 오래전부터 고수해온 '원칙'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를 아무리 비판해도 '시청률만 나온다면' 이라는 논리 앞에서 무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맛은 없지만 영양가가 높은 것'과 '달달하지만 영양은 빵점'인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방송의 현실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인 것이 되겠지만 항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하더라도 이것만은 지켜보자. 약속된 회차만은 지켜서 '조기 종영' 이라는 구태를 없애보자는 것이다. 드라마의 경우 이것은 '쪽대본'으로 상징되는 열악한 제작환경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꾸준히 지적돼 왔듯이 '사전 제작제'가 정착된다면 16회나 20회로 예정되었던 미니시리즈가 회차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뜬금없이 막을 내리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반대로 시청자 반응이 좋다는 이유로 억지로 스토리를 늘려가는 '연장 방영'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케이블, 종편에다 모바일 매체까지 늘어나면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조기에 승기를 잡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기 종영을 부추긴다. 하지만 조기 종영이라는 '칼질'은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결국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과거처럼 서너 개의 방송 채널에만 목을 매달아야는 '을'의 입장이 아니다.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기까지 하는 '능동적인 참여자'이다. 그러니 방송사들은 시청자가 '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살벌한 경쟁 분위기에서 스스로 도태를 재촉하게 될 것이다. 그 출발점은 '조기 종영'이라는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것이다.

이준학 기자 junhak@xportsnews.com 

[사진 = '세계의 끝', '한반도' 포스터, '달빛프린스', '토크클럽 배우들', '맛있는 인생' 제작발표회 당시의 모습 ⓒ JTBC, TV조선, 엑스포츠뉴스 DB]



이준학 기자 junhak@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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